"엄마로, IOC위원 후보로 더 큰 도전···집념의 박인비 기대하세요"[이사람]

양준호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2024. 1. 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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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IOC 선수위원 선거 앞둔 박인비
지난해 딸 출산···꿈꿔왔던 패밀리 완성
화목한 모습 보이는게 최고 육아법 같아
아이가 어떤 진로 택하든 운동은 권할것
올림픽 출전 계기로 IOC위원 출마 결심
스포츠로 전세계 하나되고 용기 북돋는
올림픽 정신·가치 더 널리 알리고 싶어
7월 파리올림픽까지 혼신을 다해 준비
[서울경제]

1988년생 용띠 골퍼 박인비(36)는 말하는 것을 보면 때로 1976년이나 심지어 1964년 용띠 같다. 발언과 행간에서 골프와 골프 외 삶에 대한 상당한 통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강행을 놓고 말이 많았을 때 박인비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중 상당수는 그냥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들이잖아요. ‘남이 나를 신경 쓰는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길지 않다’ ‘어쩌면 5분도 안 되는 그 시간 때문에 내가 죽을 만큼의 부담을 느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올림픽 뒤 부상이 악화해 골프 인생을 접는 한이 있더라도 도전에 후회는 없을 것 같았어요.”

당시 심각한 손가락 부상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박인비는 “손가락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겠다”며 올림픽에 출사표를 던졌고 2위와 5타 차 압승으로 골프 선수 최초의 골든 슬램(4대 메이저 우승+올림픽 금메달) 위업을 이뤘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골프 여제’ 박인비는 여전히 도전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 만난 그는 “1998년에 골프 시작해서 골프 선수로만 살았다. 이제부터는 쭉 도전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한 아이의 엄마가 됐으니 엄마로서 사는 새로운 삶이 큰 도전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출마도 제가 해보지 않은 일에 새롭게 도전하는 거잖아요. 새로운 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시작하고 있으니 지금이 정말 도전 중의 도전이네요.”

박인비는 지난해 4월 첫아이 인서 양을 낳았다. 3.7㎏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딸은 아빠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다른 곳은 몰라도 귀는 천생 엄마 귀란다. 박인비는 “귀 모양이 저랑 완전히 똑같다. 이런 게 DNA의 신비인가 싶다. 두상도 저랑 굉장히 닮았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고. ‘아이가 내 성을 따르니까 당신 이름 속 글자도 들어가야 한다’며 ‘인’ 자를 넣었다고 한다. 스윙 코치인 남편 남기협(43) 씨는 예전부터 ‘스위트’하기로 유명했다. 아빠가 된 뒤로 그는 외부 저녁 약속을 삼가고 아기 목욕을 전담하고 있다.

부부는 올해 결혼 10주년이다. 아이가 없던 부부에게는 반려견 리오가 자식이었다. 리우 올림픽 우승 직후에 얻은 골든리트리버다. 지금은 아이와 리오가 뒹굴며 노는 모습에서 축복을 실감한다. “가족으로서 더 단단해진 느낌이에요. 제가 꿈꿔온 패밀리의 완성이랄까요. 아기가 강아지랑 지내는 것을 엄청 좋아하고 정서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결혼 전부터 2세가 생기면 골프 선수를 시켜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해온 박인비에게 ‘만약 인서 양이 골프는 싫다고 하면 어쩔 거냐’고 물었다. 박인비는 “제가 어릴 적 한때 꿈이 의사였는데 인서가 그쪽을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며 “어떤 진로를 택하든 수영이나 테니스 등 운동은 무조건 꼭 하나 하면 좋겠다”고 했다. 어릴 때 수영과 테니스·스키를 했던 박인비는 “지금은 다른 스포츠를 한다. 바로 육아”라며 웃었다.

엄마가 돼 엄마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리게 된 것은 박인비도 마찬가지다. “저는 도와주는 이모님도 계시고 주변의 도움을 꽤 많이 받는 편이지만 저희 엄마는 저랑 제 동생까지 거의 혼자서 키우셨을 거란 말이죠.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요. 저는 사실상 ‘반육아’인데도 적응이 잘 안 되는데 옛날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낳고 다들 키워내셨을까 싶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아이가 더 컸을 때의 양육에 대해 박인비는 “밝은 에너지를 보여주고 남편과 즐겁고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며 “스마트폰 적게 보고 눈 맞춤 많이 하면서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키우는 게 제일 좋은 육아법일 것 같아서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방향을 계속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보며 “사춘기가 하나도 없었다. 운동하고 나면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잠밖에 생각이 안 났다”면서 “그래서 우리 아이도 그렇고, 성장기 친구들이 운동을 열심히 하기를 권한다”고도 했다.

리우 올림픽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골프 인생 중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한 박인비는 앞으로의 일들이 더 큰 도전이라며 “두렵고 갈피도 못 잡아 헤맸지만 이제 조금 궤도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IOC 선수위원 선출에 나설 한국 대표 후보로 지난해 여름 등록했고 면접과 심사를 거쳐 한국 대표로 뽑혔다. 각국에서 32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된 가운데 올 7월 파리 올림픽 기간 참가 선수 1만여 명의 투표로 최종 4명을 뽑는다. 8대1의 경쟁률이지만 외신들은 박인비를 유력한 선수위원 후보로 본다.

박인비는 “(선수들에게) 아주 편안하게 다가갈 생각이다. 제가 누구인지 얼굴을 익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라며 “유승민 선수위원(2016년 당선)처럼 정말 많이 다니면서 한 명이라도 더 만나는 게 포인트일 것 같다. 정말 쉽지 않을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볼 각오가 돼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 줄짜리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에 박인비는 “맡은 임무는 꼭 해내는 집요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해요. 30초 만에 다시 전화해서 ‘다 됐을까요?’라고 재촉하는 수준이니. 음식점도 내가 여기를 꼭 가야 되겠다 싶으면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꼭 거기서 먹어야 할 때가 있고요.”

새해 결심에 있어서도 집요한 편일까. “처음 결심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계획을 따라가지 못했을 때 포기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결심을 되짚어보면서 한 번이라도 더 실천에 옮기면 그게 ‘위너’라고 생각해요.”

박인비의 새해 결심은 “그동안 못했던 웨이트트레이닝을 조금씩 하고 골프 연습도 다시 하는 것, 그리고 영어 공부 열심히”다. 이미 원어민 수준이지만 한국 대표 자격으로 나가는 만큼 조금의 모자람도 없어야 한단다. “자기 계발 시간을 많이 가져서 올림픽에 갈 때면 내 자신이 준비가 많이 돼 있는 상태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올인’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박인비는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국제홍보·공공외교를 전공했다. 2014년 입학해 2년 뒤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입학 때는 골프가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는 소식을 이제 막 듣던 때였다. 부모님과 주변에서 IOC 선수위원에 대한 얘기를 하기는 했다”며 “선수위원도 좋은 ‘넥스트 스텝’이겠다고 생각한 정도였는데 2016년에 올림픽을 경험하고는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봐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발전했다”고 돌아봤다.

올림픽 경험 그 자체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TV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과 참여 선수로서 직접 올림픽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데도 스포츠로 전 세계가 하나가 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흥미로웠고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그런 무대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저한테는 더 특별하게 다가왔고 그때부터 IOC나 올림픽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박인비는 “올림피즘(올림픽 정신)이 주는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도 했다. “올림픽 출전을 놓고 만약 간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누군가 저한테 이러더라고요. 올림픽은 일반적인 스포츠 경기처럼 그냥 나가서 잘하고 그래서 1등 하면 전부인 대회가 아니라고. 올림피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요.” 박인비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많은 용기를 줄 수 있을뿐더러 스포츠를 통해서 전 세계인이 교류하고 하나가 되고 어린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건강하게 자라나가는 과정들이 다 올림피즘의 가치라고 받아들이게 됐다”며 “올림픽 정신을 더 널리 알리는 올림픽 무브먼트에 나도 함께하면 좋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말했다.

1년 뒤 이맘때 박인비는 또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는 “구체적으로 뭘 준비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IOC 선수위원이 됐든 못 됐든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사람이 돼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아기 엄마로 살거나 선수위원 활동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겠죠?” 어느 쪽이 됐든 우리가 아는 박인비는 맡은 임무를 남다른 ‘집요함’으로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She is...

△1988년 경기 성남 △미국 주니어 대회 통산 9승 △2007년 LPGA 투어 데뷔 △2008년 US 여자오픈 우승(LPGA 투어 첫 승) △2015년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석권) △2016년 LPGA 명예의 전당 입회(27세 10개월 최연소) △2016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 △2021년 KIA 클래식까지 LPGA 투어 통산 21승(박세리의 25승에 이어 한국 선수 2위) △메이저 대회 7승(한국 선수 최다) △2023년 IOC 선수위원 후보 선정

양준호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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