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연루 계좌" 거짓 신고 …'통장묶기' 사기에 발동동
제3자 통장으로 일정액 송금
범죄거래 관련 사실 신고해
피해자 모든 계좌 동결되면
해제시켜주겠다며 돈 요구
경찰·은행 "현재 구제책 없다"
관련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중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심 모씨(48)는 신종 보이스피싱을 당하고도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급한 마음에 찾은 은행과 경찰에서는 별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계좌에 모르는 사람 명의로 2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이상하게 생각해 바로 다음 날 은행을 방문했지만 이미 자신의 모든 통장과 계좌가 동결된 후였다. 최근 성행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인 '통장 묶기'를 당한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통장이 동결된 심씨는 월급을 받거나 돈을 송금하는 등 모든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심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저같이 억울한 제3의 피해자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경찰도, 은행도, 금융감독원도 현행법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민사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누가 책임져주느냐"고 토로했다.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인 통장 묶기가 성행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통장 묶기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구멍을 악용한 새로운 금융범죄 수법이다. 전화나 메시지 등으로 접근해 피해자를 속였던 기존 보이스피싱보다 한층 더 악질적이라는 평가다.
합의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피싱 피해자 계좌에 입금한 뒤 문제가 있는 계좌라고 신고하면 계좌가 동결된다는 점을 악용해 의도적으로 접근해 금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이 피싱 피해 계좌를 활용하는 방법은 교묘하다. 피싱 피해자에게 중고거래인 척 접근한 뒤 '물건을 보내줄 테니 돈을 입금하라'고 하면서 제3자의 계좌번호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일단 입금되면 해당 계좌는 꼼짝없이 문제 계좌로 '묶여버리고' 이를 풀어주겠다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유정훈 IBS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통장 묶기 피해자에게 접근해 '합의금을 주면 동결을 풀어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라며 "그러나 동결을 풀려면 반드시 피싱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금전을 요구하는 범죄조직에 절대 돈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3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당장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한 실정이다. 현행법상으로는 통장 묶기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통장 묶기에 당해 동결된 계좌를 풀려면 피싱 피해자와 통장 묶기 피해자가 서로 입금된 돈을 반환하고 이를 받겠다고 합의하는 수밖에 없다. 경찰과 은행은 양쪽 피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도록 중재하고, 금감원은 빨리 조정이 성립되도록 감독하는 등 제한적인 역할만 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통장 묶기를 당해도 금융기관에서 볼 때 사기 이용 계좌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입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기존 금액은 정상적으로 입출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보호법 부재로 통장 묶기를 예방하거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만큼 최대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감원이나 금융기관이 피싱에 연루된 통장이나 계좌 동결을 임의로 풀어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재로서는 통장 묶기에 당했다면 최대한 빨리 은행에 연락하고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신속한 중재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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