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진상규명 첫 걸음···대통령 거부권 행사 말아야”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처리로 통과되자 유가족들은 “여·야합의 통과가 이뤄지지 못해 아쉽지만 늦게나마 진상규명의 첫발을 떼게 된 건 다행”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국회 통과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통화에서 “야당 단독으로라도 특별법이 통과된 건 다행”이라면서도 “지금까지 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고 대통령이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공식처럼 됐다. 이번에는 그 공식에서 탈피해 여·야가 합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해 허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본회의 표결을 방청한 고 이상은씨 어머니 강선이씨는 “당초 목표였던 1주기보다 특별법 제정이 늦어진 건 아쉽지만 일상을 버리고 싸워온 것에 대해 작게나마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위로를 얻는다”면서 “아이들에게 우리가 조금씩 뭔가를 해나가고 있다는 희망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4월 전국을 순회하며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촉구했다. 특별법은 지난해 6월30일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유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인 지 10일 만이었다. 특별법은 지난해 8월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여당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특별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90일간 논의없이 계류되다 11월29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고 오지민씨 아버지 오일석씨는 “참사는 참사 자체로 봐야 하는데 거기에 정치가 개입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단식농성·오체투지·1인 시위 등을 이어오며 특별법의 여·야합의 통과를 촉구했다. 여당 측과 직접 만나 수차례 의견을 교환하는 등 설득에 나섰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중재안을 내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놓고 이날까지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합의 통과는 무산됐다.
이 위원장은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다 양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여당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법안에 반영했다”면서 “그러나 여당과 특조위원장 자리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당이 특별조사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면 특조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 우려됐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으로 참사 진상규명에 한 발 다가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 송채림씨 아버지 송진영씨는 “참사 책임자 중 아직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재판 중인 사건들도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국민의힘은 진상규명이 아니라 배·보상 문제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진상규명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다”고 했다.
강씨는 “여당은 자꾸 특별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몰아가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진상규명 뿐이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왜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거리를 헤매고 있겠나”라고 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송씨는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한다 해도 우리는 10년, 20년 싸우면서 진실을 밝힐 것이다. 거부권에 대한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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