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외줄타기, 시스템의 힘으로 극복할까
포항 스틸러스는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축구를 흔드는 시대의 반항아다.
매년 남들보다 많은 예산을 쓰지 않으면서도 항상 순위표 윗줄에 버티고 있다. 창단 50주년을 맞이했던 지난해에는 인건비가 뒤에서 네 번째(94억 3257만원)인데 K리그1 준우승과 대한축구협회(FA) 우승으로 빛났다.
그랬던 포항이 2024년 시험대에 선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향방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김기동 감독이 포항을 떠나 FC서울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포항이 ‘가성비 구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매년 젊은 선수를 발굴하고, 내리막인 베테랑은 살리면서 성적을 냈다.
가성비 구단은 거꾸로 냉혹한 현실을 말한다. 든든한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금으로 넉넉한 살림을 꾸리던 것은 이제 지나간 과거다. 외부 차입금에 의존해 운영하던 2020년의 악몽은 벗어났지만 기업구단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1년 예산은 여전하다.
이 예산조차 유지하려면 해마다 주축 선수들을 1~2명 내보내 빚을 갚아야 한다. 올해는 이미 최전방 골잡이 제카를 중국의 산둥 타이산으로 보냈고, 또 한 명의 선수가 이적을 준비하고 있다. 포항 관계자는 “두 선수를 보내야 본전”이라며 “한 번이라도 흔들리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이적료 없는 자유계약(FA)으로 떠나는 선수들이 적잖다. ‘캡틴’ 김승대도 포항 대신 대전 하나시티즌의 유니폼을 입었다. 포항의 새로운 사령탑인 박태하 신임 감독은 전임자의 그림자를 지우는 동시에 사실상 새로운 팀을 만들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포항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의외로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포항이 새해를 앞두고 경력직 직원 채용에 나서자 각 구단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대거 몰리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그 증거다. 포항에 지원했던 한 구단 직원은 “포항이 외줄타기에 실패할 것이라 본다면 누가 지원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축구 현장에선 1973년 창단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포항의 전통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크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만큼 잘 정비된 시스템이 다른 구단과 다르다는 의미다. 유스시스템에서 키운 선수들로 토대를 마련하고, 그래도 채우지 못하는 부분은 외부에서 데려온다.
포항의 남다른 접근법은 외국인 선수에서도 빛난다. 큰 돈을 쓸 수 없는 대신 남들보다 먼저 움직인다. 지난해 K리그2(2부) 베스트 일레븐 공격수 조르지를 FA로 데려오면서 제카의 공백을 메웠다. 중앙 수비수 그랜트의 빈 자리는 같은 호주 출신 아스프로에게 기대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는 복권에 비유될 정도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지만, 최근 몇년간 포항이 보여준 성공사례는 신뢰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K리그1 베스트 일레븐 11명 중 4명이 포항의 외국인 선수였다. 포항이 올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발밑에 놓인 외줄이 든든한 토대로 바뀔 수 있다.
선수로 직원으로 평생 포항맨을 자랑하는 이종하 단장은 “이런 부분이 포항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힘으로 올해도 포항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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