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으로 위장한 역대급 관권선거
이재성│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는 자기분열적이다. 서민 지원한다면서 부자 세금 줄여주고, 건전재정 한다면서 감세를 남발해 스스로 재정을 파괴한다. 포퓰리즘을 비난하며 포퓰리즘에 매진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면서 애써 갖춰놓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때려부수고(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공매도 금지, 노동시간 연장), 미래 먹거리가 중요하다며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이율배반을 자행한다.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자기 아내는 예외적 존재로 성역화하고(특검법 거부), 법치주의를 말하며 법을 무시한다(시행령 통치). 자유를 말하며 (언론)자유를 탄압하고, 안보를 말하며 안보 불안을 키운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윤 대통령의 언행 불일치는 일상적이고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병적인 습관이자 확신에 찬 전략이다. 자신의 표리부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반복재생하며,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정부와 여당을 통해 확대재생산한다. 여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총선이 다가오자 윤석열 정부의 표리부동은 선거 전략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표가 되는 특정 개인들을 집중 공략할 수 있는 명분으로 변질했다. “은행 종노릇”이라는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으로 시작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부에게만 이자를 환급해 주는 것으로 귀결된 ‘은행 때리기’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전기요금도 깎아주고 세금 납부 기한도 연장해주기로 했다. 세금 체납에 대한 압류·매각 절차 유예, 부가가치세 간이과세 기준 상향 검토 등 자영업자에 정부가 줄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매일 쏟아내고 있다.
이건 600만명이 넘는 거대한 표밭에 정부가 직접 현금을 살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가 선거에 개입하는 광경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역대급 관권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독재 시대의 막걸리와 고무신과 돈 봉투가 이자환급과 전기요금 인하 같은 21세기 판본으로 진화했을 뿐, 국가의 자원으로 유권자를 매수하는 본질은 같다. 다만 교묘해져 알아채기 어려울 따름이다.
야바위 같은 눈속임은 이중언어 전략을 통해 완성된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끼워 넣은 30가지가 넘는 감세정책은 ‘내수 살리기’라는 미명으로 포장했다. 민생을 위하는 척하며 선거운동을 한다. 자영업자가 어렵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방패막이로 총선용 특혜라는 비판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야당으로선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이 침묵이라는 외통수만 있을 뿐이다. ‘김포시 서울 편입’뿐 아니라, 공매도 금지나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세 폐지 추진 등 1400만 주식 투자자를 향한 선심 정책들 역시 대체로 이런 궤적을 그리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조세형평성과 과세원칙에 모두 어긋나는 퇴행 정책들이지만, 선거를 앞둔 야당이 선명하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옳든 그르든 논쟁 자체로 몰표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런 야당의 약점을 알기에 입법이 필요한 사항까지 모조리 끌어다 일단 질러놓고 보는 것이다.
국가 운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세와 국토 관리를 볼모로 표를 구걸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어떤 최상급 형용사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사악하다. ‘퍼주기’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으로도 부족하다.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굳이 말하면, 순식간에 나라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망국적인 ‘퍼주기’이자, 두고두고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포퓰리즘’이다.
윤 대통령의 거짓말은 과거 보수정부 대통령들의 거짓말을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익을 위해 거짓말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능을 숨기려 거짓말을 했다면, 윤 대통령은 둘 다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이제 ‘나라가 거덜 나든 말든 나만 잘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우파적 유혹을 민생과 내수 살리기로 위장하고 있다. 정책으로 거짓말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와 여당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착란 상태에 빠졌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개념이 다른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불통은 혐오가 되고 혐오는 폭력이 된다. 포퓰리즘으로 인한 경제의 체력 저하 못지않게 언어의 타락을 걱정하는 까닭이다. 선을 자주 넘다 보면 선이 아예 사라진다. 그 선이 벌써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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