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자도 피해자도 서로 적대적이진 않더라”
노령의 참전군인이 60년 전 참전한 베트남 땅을 다시 찾는다. 작전지를 되짚어가며 죽은 전우를 떠올리고 민간인 학살 생존자를 만나 사과한다. 월남전참전자회를 만나 학살을 인정하자고 설득하면서도, 피해자 지원 활동가를 만나면 참전군인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사과하고 때로는 변명하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퇴역 군인의 모습이 카메라에 가감없이 담겼다. 2024년 상반기 공개될 독립 다큐멘터리 <사도>의 출연자 송정근(81)이다. <한겨레21>은 그의 구체적인 증언을 별도 기사(“학살은 있었다” 고백하는 소수가 되는 용기와 외로움)로 다뤘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출연자의 아들이다. 민간인 학살 가해자 참전군인을 가족이 직접 기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다큐 제작자인 송대일 감독을 12월28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났다.
이라크 파병 고민하자 “전쟁터가 어떤 줄 알고”
—다큐멘터리 제목 <사도> 뜻이 뭔가요.
“‘사도’의 사전적 뜻이 ‘파견된 무리’라는 뜻이예요. 참전군인을 칭하는 단어로 썼어요. 그리고 성경에 사도 바울이라는 인물이 한때 예수를 박해했다가 나중에 회개하고 돌이키잖아요. 그런 의미도 담았습니다.”
—아버지가 참전군인인 걸 어떻게 알았나요.
“월남을 갔다 오셨다는 것까지만 알았어요. 월남에 가면 밥 많이 준다, 배고프던 시절 원없이 먹는다까지만 들었어요. 그러다 2003년 제가 군 생활할 때 이라크 파병 논의가 있어서 ‘저도 한 번 가 볼까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때 아버지가 거의 15분 동안 전화로 엄청나게 열을 내시면서 네가 전쟁터가 어떤 줄 아냐, 거기 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아냐면서 전쟁터에서 겪었던 끔찍한 이야기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시더라고요.
—놀라셨겠네요.
“굉장히 의외였어요. 그 뒤로 명절에 술 한 잔 할 때도 베트남 전쟁이 대화 주제로 나오니까 아버지께서 ‘거기서 다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거기서 학살이 있었다에 대한 놀람이 아니라….
—그 얘기를 가족이 했다는 데 놀란 건가요.
“네. 왜냐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근데 이제 거기(아버지가 말했다는 것)서 놀랐고요. 굳이 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거기는 작전 지역에 들어가면 대부분 마을 다 불태우고 가축도 사람도 다 죽였다. 쓸고 나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뒤로 몇 번 더 이야기가 더 나왔을 때 기록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기록을) 남겨두면 누군가 쓰겠지 생각해서요. 아버지는 수락하셨어요 . 그런데 제가 2년 정도 망설였습니다.”
하고팠던 이야기가 서로 상반되더라
—무엇을 망설이셨어요?
“출연자도 저도 걱정됐어요. 저는 그간 방송작가로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를 다뤘는데 이 주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저희가 펀딩 사이트에 다큐 내용을 한 번 올려봤거든요. 꽤 핫한 반응이었고 언급 횟수도 많았는데 펀딩은 안 들어왔어요. ‘왜 우리가 굳이 가해자 이야기를 들어줘야 돼’가 주된 반응이었어요.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저는 이 사람의 가족이잖아요. 그리고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주겠다고 한 제작자니까 그 사이에서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시청자 반응이 출연자 입장과 많이 달랐나요.
“처음에 민간인 학살 참전군인 얘기를 다룬다고 하면 다들 ‘이 사람 너무나 회개하겠네’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만들어서 가족을 보호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아닌 걸 그렇게 (편집)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싫었어요. 그냥 좀 좋게 얘기하면 안 되나, 그렇게 고집을 부려야 되나 생각했어요.
—출연자 입장이 어땠길래요?
“이분이 다큐에 출연한 이유는 첫째, 있었던 사실(학살)은 이야기하는 게 맞다. 둘째, 그럴지라도 우리 전우들이 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지 상황 설명은 할 수 있지 않을까였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 두 가지가 상반되잖아요. 그래서 더 어려웠어요.
—두 가지가 상반된다는 의미는요.
“양쪽에서 욕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살을 인정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이유를 설명한다는 점에서요. 참전자들도 이 사람을 욕할 것이고 피해자들도 욕할 것이다. 근데 사실 찍어봤을 때 참전자들도 욕하지 않고 피해자들도 욕하지 않았어요. 서로에게 적대적이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적대적인 건 이 주제를 담론화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참전자가 까칠하다기보다 참전자회가 까칠했고요. 피해자가 까칠하다기보다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까칠했죠.”
—당사자들은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뜻인가요.
“당사자들은 만나면 서로를 안쓰러워하시더라고요. 왜냐면 다들 (전쟁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니까. 근데 이게 사회적 담론이 되면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선명해야 되니까,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에너지로 치환하려면 디테일을 삭제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화해의 여지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은 거예요.”
—다큐에도 학살 이야기에 참전자회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있던데요.
“저희가 취재하면서 참전군인들 많이 만났는데요. 많이들 학살 있었다고 얘기하세요. (무대에서는) ‘물러가라’ 하시는데 밑에 앉아 계시는 분은 사실 학살 있었다, 이거 좀 사과하고 가면 참 좋을 텐데, 근데 우리 동료들도 거기 많이 죽었어 그러면서 막 우세요. 그런 분들이 많으셨어요.
근데 그분들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건 너무 힘드신 거잖아요. 일종의 억울함이 있죠. 정부가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 게 이해가 안 가고 (학살) 얘기를 하면 나와 내 동료가 폄훼당할까 봐 두렵고….
“몰아세우는 질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았다”
다큐엔 송정근씨가 2023년 5월 베트남을 다시 찾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 로안(73)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누구의 제안이었나요.
“이 다큐는 한 늙은 병사가 본인이 경험한 전쟁에 대해 관련된 사람을 만나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예요. 그럼 관련된 분들을 다 만나야겠다 해서 월남전참전자회나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님,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쭉 만나게 됐고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정하지 않고 그냥 만나시는 모습을 찍었어요.
—그럼 사과하신 건 출연자 본인 선택이네요.
“당연히 사과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셨어요. 만난다면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하셨고 그 사과가 피해자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셨어요. 폐가 될 수도 있다, 나 좋자고 하는 사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요.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아들을 의식한 사과는 아니었을까 했어요.
“저희는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카메라만 댔어요. 현장 상황이 넉넉하지도 않았고요. 다만 아들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장면이 있긴 해요. 출연자에게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을 매우 공격적인 형태로 물어봤죠.”
—어떤 질문이죠?
“저는 아버지의 어정쩡함이 못마땅했어요.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어요. 목사님이신데 이렇게 반성이 없으셔도 되냐, 그런 모습을 보면 아들은 무슨 생각하겠냐고요. 거의 싸웠죠. 아들 시각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 장면인데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뺐어요.
왜냐면 기사를 쓰시는 기자님도, 한베평화재단도, 시민활동가분들도 결국 어떤 상처를 치유하자는 거잖아요. 제가 던진 그 질문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질문은 아니더라고요. 상처를 헤집고 또 다른 누군가한테 상처 입힐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별 병사 탓 넘어 국가 책임 이야기돼야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저는 우리 사회가 참전군인들이 빨리 돌아가시기를, 그로 인해 이 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베트남전 논의가) 복잡하게 꼬여 있는 문제고 들춰내서 이득될 것도 없잖아요.
결국 참전했던 증인들이 전향적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게 필요할 텐데 이분들도 명분이 필요할 거고요. 참전자들이 요구하는 전투수당 문제도 전향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될 텐데 한국사회는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으니까.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학살이) 수면 아래로 묻히고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만 메모리얼 되고 끝날테죠. 그걸 한국 사회가 애타게 원한다고 생각해요.
—참전군인이 사라진다는 건 사과할 당사자도 사라진단 것 아닐까요.
“당사자라기보단 사과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사실 사과는 그냥 할 수 있죠. 정부가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병사보다는) 학살을 지휘한 사람들이 사과하는 게 맞죠. 저는 이분들이 사과의 주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물론 본인들은 미안해하시고 사과해야 된다 생각도 하시는데요. 저는 개인이 너무 큰 짐을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의 책임이 크단 뜻인가요.
“왜냐하면 이 파병 자체가 박정희 대통령이 매우 적극적으로 미국에 졸라서 한 파병이잖아요. 병사들 중에선 파병이 된 지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도 많았고요. 안 가고 싶어서 어떻게든 빼려던 사람들도 많았어요. 결국 병사들은 전장에 무기로 투척된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면 박정희 정권의 파병 선택이 대한민국 전체의 선택이었나 하는 부분에선 또 고민할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송 대표는 “베트남전과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담는 것이 다큐의 주제라고 말한다. <한겨레21>과도 다큐 제작 과정에서 만났다. 다큐 공개 시점에 맞춰 보도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공개 일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보도를 먼저 하기로 결정했다. 2021년 8월 시작된 다큐 제작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중이 언제쯤 다큐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2023년 2월 국가배상 판결도 있었고 아버지 건강도 나빠지셔서 그런 내용을 추가하다 보니 길어졌어요. 베트남전쟁이라는 오래된 사건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고요. 상반기 중에 일부라도 공개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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