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이재명 대표 만나 ‘민주당 분열하면 당신 책임’이라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인터뷰는 지난 5일 진행했지만, 약속은 지난해 연말에 잡혔다. 그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이 지난 2일 일어났다. 때문에 정 전 총리는 인터뷰 내내 이 전 대표가 병상에 있다는 점을 의식해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와 지난해 12월28일 단 둘이 만났을 때 했다는 ‘벼랑 끝’ 발언(‘벼랑 끝에서 손을 놓아 떨어진다’는 뜻의 ‘현애살수’ 고사 인용) 취지와 실제 한 말이 무엇인지는 여러 차례 반복 질문을 한 끝에 어렵게 들을 수 있었다.
정 전 총리는 이 대표에게 ‘당 대표직을 빨리 내려놓으라’는 취지를 담아 “똑부러지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낙연 전 총리의 탈당과 신당 창당, ‘원칙과 상식’ 등 이른바 ‘비명’계 의원들의 탈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이 대표에게 만약 민주당 분열이 가시화된다면 ‘마이웨이’를 고집한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도 단도직입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4월 총선 승부를 가를 관건으로는 여야 각당 혁신 경쟁, 특히 공정하고 민주적인 공천 여부를 주요하게 꼽았다. 그러나 자신이 민주당에 직접 개입해 ‘역할’을 맡을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대선 패배 뒤 이 대표도, 당도 반성 없없다
―새해 벽두부터, 이재명 민주당 대표 피습이 큰 충격을 던졌다.
“심각한 정치 테러다. 상대방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정치가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위기 아닌가 생각된다. 제일 먼저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한다. 잘해서 ‘득점’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반사이익만 챙기려는 풍조가 팽배해 참으로 유감스럽다. 왜 이런 병리 현상이 발생했는지 돌아보는, 여야 정치권의 반성과 성찰이 절실하다.”
―이 대표 피습이 이낙연 전 총리의 신당 창당 움직임 등에 변수가 되겠다.
“피습 당한 이 대표 본인은 물론, ‘딴집 살림’을 생각하는 그룹들까지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이것(자신의 입장)이 최선인가’ 다시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자칫 ‘탈당, 분당은 절대 안 된다’라는, 이 대표 두둔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지난해 12월28일 이 대표와 만났을 때) ‘만약 민주당에 분열이 일어나면 그건 당 대표인 당신 책임이다, 그것을 감당하고 치유해야 할 책임도 대표가 지는 거다’라고 얘기했다. 김부겸 전 총리, 또 주위에서, 언론에서 (이 대표에게) 많이 얘기하고 있지 않나. ‘그냥 마이웨이할 게 아니라 한번 고민해 봐라,’ 그런 거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이 대표에게 당을 바꿀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많지 않았나.
“우선, 후보도 당도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또 서로 협력하고 통합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소통도 안 됐다. 지적받아 마땅한 사항들이 많이 있다.”
―이 대표 개인, 당 어느 쪽이 문제인가.
“(이 대표) 개인도 문제가 있지만, 민주당 리더들 그리고 당원들까지 다 책임이 있다. (2017년) 대선 이후, 아니면 총선에서 뜻하지 않은 대승 이후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고 국민 지지를 받는 멋진 정당으로 나아가는데 부족함이 매우 많았다. 당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가장 책임이 큰 건 당 대표이고.”
―좀 더 부연한다면.
“180석 정당은, 비록 야당이라도 국회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야당으로서의 책임뿐 아니라 국정 동반자로 국정에 협력하고 이끌어가야 될 그런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정당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부족했다. 지금 혁신 경쟁에서 혹시 민주당이 (여당에) 뒤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성하고 성찰해야 될 타이밍이다. 만약 혁신 경쟁에서 뒤지고 있으면 선거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는 거다.”
―신년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우세 예상 결과가 많았다.
“여론조사는 그저 참고만 할 따름이다. 민심은 조변석개한다. 인물·정책 다 중요하지만, 공천 영향이 굉장히 크다. 그 과정이 공정하고 민주적이냐. (민주당이) ‘부자 몸조심’할 생각이라면 천만의 말씀이다. 진짜 긴장하고, 혁신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지금 여론조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민주당 혁신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으로 ‘팬덤 정치’가 지목되는데.
“팬덤이 다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팬덤은 ‘ 득’이 아니라 ‘독’이 되는 상황이다. 국민을 보며 의정활동을 해야 하는데, 국민은 차선이고 팬덤 우선인 그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 정치가 후퇴하고 있다.”
12·28 회동 ‘벼랑 끝’ 발언, ‘대표직 내려놓으라’는 취지
―이 대표 만났을 때, ‘벼랑 끝에선 손을 놔야 한다’고 권했다. 굳이 그런 표현을 고른 이유가 있나.
“보통은 대선을 중대 선거라 하지만, 이번 총선도 중대 선거다. 사실 이 정권이 좋은 정부, 민주정부라 하긴 어렵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야당이 총선 잘 치러야 된다’며 이렇게 주문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현재 혁신 경쟁에서 밀리고, 공천 과정도 좋은 얘기가 안 들리고, 인재 영입도 시원치 않다. 그래서 만약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못 얻는다, 그러면 그게 낭떠러지 아니고 무엇인가. 민주당 위기이면서 당 대표 위기다. 선거가 잘 되면 다 대표 덕인 거고, 잘못 돼도 다 대표 책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낭떠러지도 보통 낭떠러지가 아니다. 작은 이익, 기득권 챙기려고 매달려 있으면 힘이 빠져서 죽는 것이고, 손을 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대표에게 ‘대표직 빨리 내려놔라’ 그런 취지의 말씀 아닌가.
“그때는 그런 취지가 포함된 것이었는데, (피습 이후인) 지금은 심한 얘기를 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다.”
―만약 이 대표가 처한 상황에 본인이 있다고 가정하면.
“(즉답을 않고 한참 생각하다) 결단했을 거다.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봐 (민주당에) 큰 변화가 필요했다. 이 대표 본인에게는 똑부러지게 얘기했다. 대화하고 나서 발표한 내용보다 명확하게 얘기했다.”
―이 대표 반응은.
“즉답은 없었다.”
민주당, 국민의힘에 ‘혁신’ 밀리면 의외 결과 나올 수도
―이 대표를 성남시장 후보로 공천한 개인적 인연이 있지 않나.
“당시 당 대표였는데,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다. 그런데 누가 추천해 상근 부대변인으로 임명했고, 직 수행하는 걸 보고 경쟁력 있는 후보라고 판단해 공천했을 따름이다. ‘선당후사’, 내가 처음 만든 말인데, 그걸 실천한 것뿐이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상황은 정반대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 공천을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의외의 선거 결과가 나온다. 시기적으로도 야당에게 아주 유리한 선거는 아니다. 저쪽(여당)은 민생·외교안보 다 어렵고, 대통령 지지율도 형편없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혁신하고 변한 모습을 보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그런 게 안 보인다. 그래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거다.”
―‘비례대표 선거제’ 관련 민주당 태도도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여야 양당이 참 염치없는 사람들이다. 선거가 이미 시작됐는데, 확정 안 해주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현역들은 그래도 좀 낫겠지만 그 많은 신인들이 지금 뛰고 있는데, 아직도 게임의 룰, 선거구 획정도 안 해주고 있으니. 그래서 이 대표 만났을 때 ‘잘 하는 것보다 빨리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빨리 (결정)하라’고 한 거다. ‘만약에 약속을 못 지킬 일이 생기면 먼저 사과해야 된다, 그리고 빨리 결론을 내라’라고 했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다.”
―이 대표의 답변은.
“상당히 고민스러운 표정을 하더라. 말씀도 했으나, 그건 야당 협상전략일 수도 있어, 더 이상 언급은 않겠다.”
―‘전대 돈봉투 사건’ 등을 계기로, 민주당 내 586이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586이 우리 정치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586, 너희들은 (다) 물러나라’라고 하는 것도 근거 없다고 본다. 다만, 586들이 ‘정치 그만해라’라는 얘기가 안 나오게 잘해야지, 잘하면 그만하라는 얘기 안 나올 것 아닌가. 내가 봐도 별로 잘한 게 없다.”
윤 정부, 마이너스 성적표…대통령은 민생·평화 역점 둬야
―화제를 바꿔, 윤 대통령 집권 후 1년 반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께서 국정 수행에 전혀 만족 못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나 여권에서 성찰해야 한다. 외교안보, 민생경제, 민주주의, 이렇게 3대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정권이라고 본다. 특히 인사나 거부권 남발을 보면 ‘국민을 존중하는 기색이 전혀 없구나’ 이런 느낌을 받는다. 큰 일이다.”
―잘한 게 전무하다는 말씀인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0점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나라 발전에 전혀 득이 안 되는 정권이라 생각한다. 예상보다도 너무 못 한다. 과거 정치 경험이 부족한 대통령은 두루 유능한 인재를 구해서 썼는데, 이 정부는 검찰에만 의존한다. 여당도 일방통행 관계다. 특히 감사원을 동원해 전 정권 사람들을 단죄하려는 시도는 국가의 근본을 흐트러뜨리는 거라고 본다. 감사원 동원은 이 정부가 처음이고, 최악이다. 사실 득도 별로 없는데. 공직사회가 완전히 복지부동이다. 결국 정부가 과업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뿐이다.”
―올해 대통령 신년사는 어떻게 봤나.
“자화자찬을 좀 했던데, 전혀 공감을 못 얻을 것 같다. 성찰은 부족하고, 무슨 ‘카르텔’ 얘기를 하고. 요새 업무보고를 받던데, 일반 사람들까지 불러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 정책에서도 증권, 주택 관련 등 총선에 너무 올인하는 것 같다. 표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총선은 당에 좀 맡겨놓고, 대통령이나 정부는 그렇게 너무 관여하면 안 된다. 그걸 옛날에 ‘관권선거’라 하지 않았나. 지금 그런 조짐이 좀 보인다. 그러면 선거가 과열되고, 선거 결과에 승복을 못하게 되고, 아주 좋지 않은 거다.”
―그래도 도움 말씀을 한다면.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민생 안정이다. 평화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지전 같은 전쟁도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보다 못하다.”
한 위원장,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 낼 때 존재 가치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판과 이후 활동은 어떻게 보나.
“재주가 있으니까 기용을 했을텐데, (잘 하려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여권의 가장 큰 문제가 대통령한테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 걸 할 수 있어야 한 위원장의 존재 가치가 있는 거다. 그런 걸 제대로 하면 민주당이 긴장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김건희 특검’ 하는 걸 보니, 앞으로 좀 두고 봐야 될 것 같다.”
―대통령 부인의 처신이 일찍이 이렇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선거 전 약속대로 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으면 야당이 이렇게 나왔을까. 하여튼 (대통령이) 약속을 안 지킨 거 아닌가. ‘말따로 행동 따로’면 신뢰가 깨지는 거다. 손해 보는 듯하더라도 약속은 지키고, 말했으면 행동해야 하는 거다.”
―총선 앞두고 이합집산이 계속될 텐데,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의 미래는.
“(양쪽이) 다 열어놓고 하는 거 아니겠나. 제휴, 연대, 통합 중 어떤 구도가 그려질지는 (여야) 양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양당에 실망한 국민이 굉장히 많은 건 사실이다.”
―윤 정부 실정을 보며, ‘대통령 중심제’의 한계를 거론하는 목소리들이 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박근혜 정부 말기~문재인 정부 초반) 개헌 기회가 있었지만, 지도자들이 결단 못해 호기를 놓쳤다. 36년째 개헌을 못하고 있는데, 36년 전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다. 권력구조의 경우 내각제, 반내각제 등등 여러 제도적 대안이 있지만, 결국은 ‘국민 수용성’이 중요하다. 그런 걸 정치권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지도자들의 사명감이나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니, 나라가 멍들고 있다.”
―이 대표 체제 민주당에 근본적 변화가 없을 경우, 총선 국면에서 역할을 할 생각이 있나.
“이제 어떤 직책이나 자리는 전혀 맡을 생각이 없다. 하지 만 민주당 당원으로서, 또 상임고문이니까, 좋아하는 후배들을 지원하고, 그런 노력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 전 총리는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 20대 국회까지 내리 6선을 했다. 마지막 20대 국회에선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어 2020년 초 문재인 정부 두번째 총리에 지명돼 ‘코로나 팬데믹’ 초기 방역을 지휘했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2008년 총선에서 81석짜리 소수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의 당 대표를 맡아 특유의 리더십으로 재건의 밑돌을 놓았다. 민주당의 ‘고점’과 ‘저점’을 두루 경험한, 폭넓은 정치 이력을 지니고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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