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청년 거점 되려면 제조업 치중 벗고 다양성 키워야
[지방 청년 실종 : 9회 청주]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이번 달은 창간특집 게재로 두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충북 청주시는 중앙 정부의 지원 없이도 지역 거점 도시의 면모를 착착 갖춰가고 있다.
2014년 청원군과 통합 이후 비수도권 도시로는 드물게 주민이 꾸준히 증가하며 85만 명을 넘어섰다. 2022년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로 승격되면서, 비수도권 일반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가장 인구가 많다. 청주 주변에 대기업과 공단이 다수 입주해 청년 유입이 꾸준히 이뤄진다. 또 합계출산율도 0.87로 전국 평균(0.77)을 앞서, 인구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주의 청년인구비율은 2018년 28.9%에서 2022년 27.3%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런 감소세에도 청주는 청년인구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젊은 도시이다.
청주는 충북의 미니 수도권
청주가 이렇게 비수도권 거점 도시의 선두 주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다. 청주에서 만난 토박이 청년은 “청주는 원래부터 거점 도시”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청주는 통일신라 시절부터 경주를 제외한 5대 도시 중 하나였다. 남북으로 길쭉한 충청북도는 산세로 인해 자연스럽게 3개 생활권으로 나눠지는데 충북 중부라 할 수 있는 진천 증평 음성 괴산 등은 오래전부터 청주의 구심력이 작용하는 지역이다. 20세기 후반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수도권과 비교적 가깝다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해 대기업을 비롯, 제조업체들이 200개 넘게 자리 잡고 풍부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청주산업단지, 오창과학산업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 등에 다양한 첨단업체들이 입주해 있는데, 대표기업만 열거해도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삼성SDI LG전자 LG화학 LG생활건강 LS산전 셀트리온 에코프로 등이 있다. 동시에 수도권과 적당히 떨어져 있어 수도권 흡입력이 미치지 못한다. 청주 입주 업체 직원들과 가족은 대부분 청주에 거주한다. 인접한 천안의 경우 직장인과 대학생들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출퇴근·통학하는 것과 대비된다.
청주 구도심은 주로 산업단지 직원들이 거주하는 신도시가 미처 갖추지 못한 병원 학교 같은 생활시설을 제공하며 성장하고 있다. 청주 청년은 “직장과 가까운 증평 진천 등에 살다가도 자녀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온 가족이 청주로 이사하거나 여의찮으면 주말부부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청주는 충북 중부의 미니 수도권인 셈이다.
청주 문화시설 사교육 수도권보다 앞서
충북 중부의 거점도시 청주의 객관적 위치를 살펴보기 위해 청주와 인구가 비슷한 수도권 성남시(92만 명), 부천시(78만 명) 그리고 서울의 안심영역·만족영역 지수와 비교했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먼저 생활 편의성을 비교할 수 있는 만족 영역을 살펴보면 청주가 왜 충북 중부의 거점 도시인지 알 수 있다. 특히 인구 대비 사설 학원 수 등으로 측정한 사교육 지수에서 청주는 0.84로 성남(1.0)에 다소 뒤질 뿐 서울(0.7) 부천(0.79)보다도 앞선다. “청주 인근에 살다가 교육을 위해 청주로 유턴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청주시와 인근 세종시 진천군 증평군의 초중고 학생의 전입과 전출 격차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청주시는 2018년 이후 꾸준히 전입생과 전출생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전은 안정적으로 초중고생의 전입이 전출보다 많다. 반면 진천군은 높게 유지되는 전입생 우위 추세가 2020년부터 급격히 꺾이기 시작해 2021년 이후 전출생 우위로 반전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세종시이다. 비교적 새로 건설된 도시에다 정부종합청사가 위치해 교육여건이 좋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2019년 하반기부터 전출생 우위로 반전해 꾸준히 초중고생들이 줄어드는 추세다.
인구 대비 문화시설 지수는 청주가 1.0으로 성남(0.6) 부천(0.7)은 물론 서울(0.9)보다도 높다. 대규모 쇼핑 시설과 각종 생활어메니티는 수도권에 비해 약간 뒤지지만, 비수도권 도시들을 생각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다만 면적 대비 만족지표는 수도권에 비해 모두 낮다. 청주가 서울보다 50% 정도 넓은 걸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으나, 각종 생활편의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대중교통망 확충 등이 필요해 보인다.
제조업 편중, 의료시설 취약은 개선해야
안심영역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인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비교한 지표이다. 우선 청주의 일자리 지수는 0.64로 부천(0.57)보다는 앞서지만, 성남(0.96) 서울(0.95)과는 격차가 크다. 충북 전체 GDP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청주의 일자리 지수가 낮다는 것에서 제조업과 대기업 위주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공업도시 포항이나 광양도 비슷한 상황이다. 청주의 산업별 취업자나 직업별 취업자 추이를 살펴봐도 청주의 일자리 문제가 드러난다. 산업별로 보면 광업·제조업 일자리가 23%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장 많은 산업은 개인 사업으로 37~38%를 오르내린다. 이 두 일자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일자리가 특정 분야에 편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직업별 취업자를 살펴보면 기능·기계조작 단순 노무 종사자가 36~37%나 된다. 20% 수준인 청주 입주 기업 취업자를 제외하면 다수가 저임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젊은 도시 청주도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일자리는 부족하다. 일자리의 다양성 부족은 비수도권 도시 대부분이 풀어야 할 공통 난제로 보인다.
생활안전과 범죄율 등을 측정한 안전지수도 0.4에 그쳐, 부천(0.3)보다는 앞서지만 성남·서울(모두 0.6)에는 뒤진다. 다행히 대기 수질 소음 녹지 환경 등을 종합한 환경지수는 0.61로 성남(0.48) 부천(0.56)보다 양호하다. 서울(0.65)과 비슷한 수준이다.
청주가 가장 뒤처지는 건 의료다. 청주 의료지수는 0.79로 성남(0.98) 부천(0.83) 서울(0.85)보다 낮았다. 청주 인근 지자체 주민들이 “아프면 청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걸 고려하면 충북의 의료 인프라가 전반적으로 열악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조사에서 충북 공공의료 수준은 전국 최하위로 평가됐다.
청주에 대한 여러 객관적 지표와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청주는 이미 지역 거점 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방청년 실종 시대 극복을 위해 다른 지방 도시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특히 생활 편의시설은 수도권 못지않게 잘 갖추고 있다. 단적으로 청주에서 영업하는 카페(2020년 8월 기준)가 1,300여 곳으로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많다. 인근 대전 세종의 젊은이들이 청주의 카페를 순례할 정도다. 여기에 풍부한 문화시설도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한다. 잘 갖춰진 교육 인프라도 젊은 부부들이 청주에 오래 정주할 수 있는 요소다.
반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이는 청주 경제가 지나치게 제조업 의존도가 높다는 데서 파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일자리 생태계 다양화다. 청년들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창업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또 청주가 주변 공단에 생활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배후 도시 역할에 만족하지 말고 충북권 균형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청주는 충북의 인구와 GDP의 절반 이상을 독차지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과도해진 것처럼, 청주 편중 발전은 충북뿐 아니라 청주의 미래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지금까지 여러 지역 도시에 대한 관찰 속에서 수도권 집중과 지역인구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청주는 달랐다. 수도권이 아니어도 다양한 여건이 갖춰진다면 자족과 성장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새로운 도약을 모색한다면 주변 지역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상생의 토대부터 검토,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 정리: 한규리 신호정(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석사과정)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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