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작별한 ‘카이저’, 그는 가장 완벽한 ‘축구인’이었다
‘카이저(황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가 현지시간으로 8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축구계에서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모두 성공한 보기 드문 케이스였던 그는 가장 완벽했던 ‘축구인’으로 꼽힌다.
지금은 독일을 넘어 유럽 축구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바이에른 뮌헨은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리 주목받는 팀은 아니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1963년 출범했는데, 뮌헨은 당시 분데스리가에 들지 못하고 2부 리그에 머물렀다. 베켄바워는 1959년 뮌헨 유스팀에 입단했고, 1965~1966시즌 뮌헨이 분데스리가로 승격함에 따라 1부 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베켄바워와 함께, 뮌헨은 분데스리가 최초의 리그 3연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1977년 뉴욕 코스모스(미국)으로 이적해 ‘축구 황제’ 펠레와 같이 뛰기도 했던 베켄바워는 1980년 함부르크로 돌아와 1981~1982시즌 다시 한 번 분데스리가 정상에 섰다.
하지만 베켄바워가 가장 빛났던 곳은 바로 대표팀이었다. 당시는 독일이 통일하기 전이라 서독 대표팀으로 뛰었던 베켄바워는 뮌헨에서 호흡을 맞춘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등과 함께 독일 축구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7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972)에서 독일의 우승을 이끌었던 베켄바워는 2년 뒤인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독일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결승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요한 크라위프가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2-1로 승리, 서독에 우승을 안겼다.
선수 베켄바워는 크라위프 못지 않은 ‘혁명가’였다. 베켄바워는 데뷔 초기만 하더라도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최후방 수비수로 활약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특히 수비 라인보다 한층 더 아래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리베로라는 개념에 공격적인 역할을 가미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볼 컨트롤은 미드필더로 활약할 때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베켄바워는 자신이 직접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거나, 정확한 롱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등 최후방에서도 자신이 경기를 직접 이끌어갔다.
카이저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자신의 축구 실력과 독일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의 크라위프가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자 지금도 회자되는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소 오만해보이기까지 했지만, 베켄바워였기에 모두가 인정했다.
지도자 경력 또한 화려했다. 베켄바워는 1983년 은퇴를 선언한 뒤 1년 후인 1984년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서독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선수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베켄바워는 감독으로도 카리스마를 발휘해 스타 플레이어들을 통제했고 그 결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유로 1988 3위에 이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우승한 것은 지난 5일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베켄바워가 2번째였다. 이후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이 3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프랑스 리그1의 마르세유 감독을 맡아 1990~1991시즌 우승을 이끈 베켄바워는 이후 친정인 뮌헨 사령탑으로 부임해 1993~1994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에는 행정가로 변신해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회장직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는 명예회장을 지냈다. 뮌헨은 베켄바워가 회장으로 있던 시절 좋은 성적과 함께 매 시즌 흑자를 내는 튼튼한 운영으로 이름을 드높였다. 베켄바워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유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조직위원장까지 맡아 성공적인 개최를 이끌기도 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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