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잡아와 3주간 벌인 '집단학살', 인간은 어떻게 보도했나
[비평] 화천산천어축제 보도, 화천군 입장에서 '지역경기 활성화'만 담아...산천어 놀잇감, 생태파괴·동물학대 주장 외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A는 경북 울진에 살았다. 전해지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엔 동해바다가 보이는 곳, 유난히도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A를 포함해 모두가 같은 시각에 같은 밥을 먹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새해가 밝았다. A가 사는 시설 관리자가 느닷없이 밥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A와 그의 동료들은 닷새 정도 굶었다. 그리고는 차에 나눠 실렸다. 너무 많은 이들을 실어 밀집한 탓에 다들 힘들어했다. A의 오랜 친구 B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안에 남아있던 토사물을 다 쏟아내고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일을 예상해 굶긴 걸까? 충격으로 A는 기절했다.
너무 추워서 깨어보니 낯선 곳이었다. 강원도 화천군, 이곳은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이 아닌데 매년 1월 우리는 이곳으로 끌려온다. 강원도 영월, 경북 봉화 등 전국 18개 지역에서 50만명이 모였다. 익숙해지지 않는 추위를 견디다 보니 천장은 얼음이 두텁게 있는 걸 발견했다. 얼음 밑에 강제로 집어넣어 30만명 이상이 집단으로 사망한 사건을 들은 기억이 났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때, 뾰족한 바늘이 내려왔다. 화천에 와서 사귄 친구, 춘천에서 온 C가 찔렀다. 몸통에 찔려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곪아가고 친구는 움직임이 둔해졌다.
화천 인근에서 온 D와 E는 아픈 C를 함께 돌보며 자연스레 A와 친해졌다. E는 그동안 굶던 탓에 무언가 음식처럼 보이면 닥치는 대로 먹다가 바늘에 딸려 얼음 위로 올라갔다. D는 그물에 걸려 또 다른 공간에 끌려갔다. 500명 넘게 함께 갇힌 듯 했다. 갑자기 사람들 십수명이 달려들어 D와 그의 동료들을 맨손으로 잡기 시작했다. 결국 어떤 사람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D의 아가미가 찢어졌다. 그 사람은 D를 옷 속에 넣었다. 옷 속에는 이미 또 다른 동료가 죽어가고 있었다. 온몸에 기운이 빠질 때쯤 또 다른 친구가 옷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내 우리 셋을 얼음에 내동댕이치더니 발로 차기 시작했다. D는 사진을 찍히던 중 사망했다.
그 와중에 바늘에 찔렸던 C도 결국 죽었다. C 곁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열심히 버티고 있던 A도 온몸이 화상을 입은 듯 아팠다. 많은 이들 속에 떠밀리다 찰과상을 입었고 바늘에 한두번 찔린 게 아니었다. 물이 너무 더러워졌고 숨을 쉬기 힘든데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보니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많았다. 동료들 수십만이 다양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고, 이러한 집단 학살은 3주간 계속됐다. 사람들은 이 집단학살을 '화천산천어축제'라고 불렀고, “즐거운 비명”이자 “지역경기 훈풍”이라고 기록했다.
위 내용은 산천어(A·B·C·D) 관점에서 '화천산천어축제'를 취재했다면 썼을 법한 가상의 기사다. 올해 화천산천어축제는 지난 6일 시작해 오는 28일까지 23일간 진행한다. 산천어 입장에서 보면 집단 괴롭힘과 학살 현장을 실제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지난 8일 전국단위언론이나 지역언론 구분 없이 축제 현장을 일제히 사진기사로 보도했다. 화천읍 화천천 넓은 얼음판 위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전국에서 생산한 산천어의 99%(구매비용 약 30억 원), 주말에만 약 20만명이 몰린 “고기 반, 사람 반”(경향신문) 풍경은 말 그대로 '볼 거리'였다.
축제 관련 기사는 철저하게 화천군 입장만 반영했다. 강원일보는 이날 <“지역 살찌우려는 간절함 성공의 비결”>이란 제목으로 '화천산천어축제 이끄는 최문수 (화천)군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부제목은 “초미니 지자체 축제에 '구름인파' 유치” “공무원·자원봉사자 얼음 사수에 총력” “'축제+파크콜프' 경제이끄는 쌍두마차”였다.
이날 강원도민일보는 <'즐거운 비명' 화천산천어축제 지역경기 훈풍> 기사를 “매해 새해 벽두에 열리는 화천산천어축제가 올해도 지역 상경기에 활기를 불어넣는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축제장 인근 숙박업소 예약이 늘었고 인근 지역상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자세히 전했다. 지역신문뿐 아니라 경제신문도 화천 경제에 도움이 된 사실에 주목했다. 이날 아주경제는 <'화천산천어축제'로 물 만난 지역경기>에서 지역신문과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들리지 않는 산천어 목소리를 대신해 시민단체가 문제제기에 나섰다. 지난 2018년 1월 시셰퍼드코리아 등 6개 단체가 모여 만든 '산천어살리기운동본부'는 맨손 잡기 프로그램 즉시 중단, 화천천을 토종어류가 정상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로 복원하기, 축제 전면 재검토해 생태적 축제로 전환하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생태·동물 친화 프로그램 실행 및 기획단계에서 동물·환경단체와 연계 등을 주장했다.
산천어가 살지 않는 지역인 화천군에선 이 축제를 위해 전국 양식장에서 산천어를 구매해 거대한 얼음 어항에 가둬 '지역경제'를 챙겼고, 관광객들은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각종 어류를 살생하며 '추억'을 쌓았다. 이러한 동물학대가 비윤리적이고 비교육적이란 지적을 담은 기사는 부족했다.
화천산천어축제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는 늘고 있다. 39개 단체는 지난 6일 화천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직 화천 산천어 축제를 위해 인공 번식으로 태어나 양식장에서 길러진 60만 마리 산천어는 고작 3주 동안 어떠한 존엄도 없이 인간의 손맛과 입맛을 위해 죽어 나간다”며 “축제가 열리는 상수원보호구역 '화천천'은 얼음 경도 강화를 위한 '수중 제초'와 겹겹으로 된 '물막이 공사'로 토종어류가 살 수 없는 곳이 돼버린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0년 시민단체들은 화천군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동물보호법 10조(동물학대 등의 금지)에선 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산천어가 '식용'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들 단체는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산천어를 놀잇감으로 이용하며 최대한 고통을 준 다음” 먹으니 학대라고 주장한다. 이에 동물보호법이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말 못하는 동물의 고통까지 다 신경써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화천산천어축제를 다루는 기사에서 화천군 입장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담길 이유는 명확하다. 특히 지역경기 발전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지만 어류의 고통, 생태계 파괴와 축제 참가자들에게 퍼지는 생명경시 분위기 등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언론에서 적극 다룰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동물해방물결, 산천어 축제 참가자들이 모르는 8가지 불편한 사실
세계일보, 전국서 모신 '귀한 몸' 160t 총집합… 50만 산천어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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