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 이영애’ 가르친 지휘자 진솔 “경로 벗어나야 뭔가 이룬다”

임석규 기자 2024. 1. 9. 15: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대 후반 여성 지휘자로 관성 깨는 폭넓은 활동
게임음악 오케스트라 편곡…이영애 연기 트레이너
드라마 ‘마에스라’에 출연하는 배우 이영애에게 지휘법을 가르친 지휘자 진솔(37). 플래직 제공

드라마 ‘마에스트라’(tvN)에서 배우 이영애가 연기하는 지휘자 차세음의 거침없음과 닮았달까. 당차고 당당하다. 이영애가 왜 그를 지휘 트레이너로 선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만난 지휘자 진솔(37)은 “10년 뒤엔 테오도르 쿠렌치스를 넘어서고 싶다”고 했다. ‘클래식의 구원자’를 자임하는 그리스 태생 지휘자 쿠렌치스(52)는 과감하고 실험적 시도로 숱한 화제를 뿌리며 세계 클래식계를 떠들썩하게 한 스타 지휘자다.

이영애에게 1년 안팎 틈틈이 지휘법을 가르쳤다는 진솔은 통념적인 지휘자 상과 조금 달랐다. “무모한 일도 해보려고 해요. 그게 저를 단련시키고, 예술가로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는 “지금은 기존 경로와 관행을 벗어나야 뭔가 이룰 수 있는 21세기”라며 “뭐든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특기’인 클래식에서도 쉽고 녹록한 길을 가려 하지 않는다. 비상설 민간 악단인 ‘아르티제’를 이끌며 도전 중인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말러리안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여 2016년 시작한 일이다. 1번과 3∙5∙6∙9번 그리고 10번을 연주했으니, 절반을 조금 넘어섰다. 그는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제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휘자 진솔(37)은 클래식 외길만 고집하지 않고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을 편곡해 무대에 올린다. 플래직 제공

클래식 외길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쉼 없이 다른 경로를 탐색한다. 그가 대표를 맡은 ‘플래직’은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전문 공연 기획사다. 2017년 설립한 이 회사는 게임·애니메이션 음악을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편곡해 무대에 올리는 게 주요 업무다. 그동안 포켓몬, 라그나로크, 스타크래프트, 리그오브레전드, 가디언 테일즈 등 유명 게임 음악을 무대에 올렸다. 공연뿐만 아니라 악보 검수와 편곡, 편곡한 악보 관리 등까지 모두 처리한다. 저작권 문제를 공부할 기회도 됐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단원들의 몸값이 예전보다 더 떨어졌는데, 공급은 많고 수요는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플래직을 통해 연주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했다. 그 스스로가 게임 애호가라 게임에 나오는 웬만한 음악은 대부분 외울 정도다. 올해는 타이, 대만 등지에서 게임 음악 관련 공연이 잡혀 있다.

지휘자가 된 경로도 이채롭다. 일반고교를 나와 여기저기 방황하다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입학했다. 부모 몰래 준비한 입시였다. 여성 지휘자가 얼마나 험한 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작곡가 아버지, 성악가 어머니가 음악가의 길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휘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89)의 연주 영상을 접하면서다.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지휘하는 영상이었어요. 왜소한 체격의 세이지 지휘자가 특유의 표정으로 단원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모습에 전율을 느꼈어요.” 지금은 대구국제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한예종 영재원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겸하고 있다. 곧 유명 출판사에서 에세이집 출간도 예정돼 있다.

지휘자 진솔(37)은 말러의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말러리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플래직 제공

진솔은 이영애에게 지휘법만 가르친 게 아니라 자문 역을 맡아 ‘마에스트라’ 음악 전반에 관여했다. 차세음이 지휘봉을 놓칠 때 나오는 슈만 교향곡 4번의 4악장은 그가 골랐다. “숨 가쁘게 휘몰아치는 빠른 템포 때문에 프로 연주자들도 쉽지 않은 부분이죠. 지휘자가 지휘봉을 놓치려면 그럴만한 곡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브람스 교향곡 1번도 그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선곡이다. “묵직한 팀파니 연주로 시작되는 곡인데, 무거운 발걸음처럼 들리는 도입부가 차세음에게 병이 다가오는 장면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차세음 남편이 피습당하는 장면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서곡을 삽입했다. 그는 “오페라 내용과도 비슷해 복선으로 사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곡”이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이영애는 곡에 맞춰 제법 그럴싸하게 손을 휘젓는데, 진솔 지휘자에게 배운 몸짓을 몸으로 외운 동작이다. 진솔 지휘자는 이영애에 대해 “온갖 질문을 수시로 던지는 호기심 넘치는 학생”이라며 웃었다.

드라마 ‘마에스트라’. tvN 제공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