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조건 붙은 태영 ‘SBS 담보’ 자구안…“확약서 없다” 우려도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계획을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윤세영(91)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과 수십대의 카메라 앞에서 추가 자구안에 대한 입장문을 읽어 내려갔다. 태영건설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부분에서는 한 어절씩 힘을 주어 말하기도 했다. 9일 발표된 추가 자구안은 ‘필요할 경우’ 티와이홀딩스와 에스비에스(SBS) 주식을 담보로 내놓을 수 있다는 내용이 뼈대다. 버티던 태영그룹이 기존 자구안을 이행하겠다고 확약한 지 하루 만에 추가 자구안도 내놓으면서 무산 위기로 치닫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에 초록 불이 켜졌다.
태영그룹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주회사와 계열사의 주식을 담보로 워크아웃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 등의 추가 자구안을 밝혔다. 윤 창업회장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 여러분의 지원만 바라지 않고 저희가 해야 할 자구노력을 더욱 충실히 수행하겠다. 만약 그래도 부족할 경우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와 에스비에스 주식도 담보로 해서 태영건설을 꼭 살려내겠다”고 말했다.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티와이홀딩스와 에스비에스 보유 지분도 담보로 제공하겠다”며 같은 뜻을 밝혔다. 태영 오너 일가는 티와이 홀딩스의 지분 33.67%를 갖고 있다. △윤 회장 25.44% △서암윤세영재단 5.43% △이상희(윤 회장 배우자) 2.3%, 윤 창업회장 0.5% 등이다. 아울러 티와이홀딩스는 에스비에스의 1대주주로 지분 36.32%를 갖고 있다.
다만 이들은 ‘기존 자구안으로 유동성 확보가 어려울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다. 태영그룹은 전날(8일) 확약한 기존 자구안만으로도 유동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태영건설의 추가 자구안 발표는 채권단과 당국이 태영그룹을 향해 워크아웃을 향한 적극성을 보이라고 압박한 결과로 보인다. 부실한 사업장을 정리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윤 창업회장은 “저희 피에프(PF) 사업장 중 정리해야 할 곳도 분명히 있다. 정리할 곳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며 “이 과정에서 채권단 여러분의 지원만 바라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존 자구안에 포함한 자회사 에코비트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코비트는 티와이홀딩스와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는데, 에코비트를 매각하기로 사모펀드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에코비트 몸값(기업가치)은 2조원대로 거론돼 매각이 성사될 경우 태영홀딩스의 유동성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금락 태영건설 부회장은 “(에코비트 매각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추가 자구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이날 주채권은행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은 “계열주와 태영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날 발표한 자구계획과 책임 이행 방안을 신속하게 추진해 협력업체, 수분양자, 채권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밝혔다. 아울러 산은은 “자구계획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실사 과정에서 대규모 추가 부실이 발견될 경우, 워크아웃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영그룹이 추가 자구안에 대해 별도의 확약 절차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 채권단 협의회에서도 기존 자구안으로는 유동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태영그룹이 추가 자구안에 대해 확약서 제출 등을 하지 않는다면 ‘말만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대국민 약속을 했으니, 지상파 방송을 경영하는 사주로서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기존 자구안 규모(5000억~8000억원)로 워크아웃 기간 동안 상거래 채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기존 자구안이란 지난해 12월28일 태영그룹이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밝힌 내용으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지급△에코비트 매각 및 매각대금 지원 △블루원 담보제공 및 매각 △평택싸이로지분 (62.5%) 담보제공 등이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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