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동산PF 위기…금융회사는 책임 없나

이경남 2024. 1. 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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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대출'·'IB' 명목 부동산PF에 자금 집중 공급
단기실적 치중…금리인상 시그널 아랑곳 안 해

올해는 예년보다 유독 부산스러운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금융권과 건설업권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뜨겁다. 

현재 초점은 태영건설이라는 중견기업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에 집중돼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시장의 위기로 이어져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단기간의 이익을 좇아 철저한 리스크 검증 없이 부동산 PF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뿌렸기 때문이다. 

부동산 PF에 자금이 흘러들어간 과정을 돌아보면 금융권이 위기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4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0년 말 92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것이 매년 상승세를 이어가더니 3년 반 만에 45.1%(41조8000억원) 폭증했다. 

3년 반 사이에 부동산 PF는 갑자기 왜 폭증했을까? 

시계를 지난 2020년으로 되돌려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코로나19라는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세계 주요국들은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다. 이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당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50%(2020년 5월~2021년 8월)까지 끌어내렸다.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금리를 낮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정부가 추구했던 점은 경제주체들이 비바람을 버틸 수 있는 '우산'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금융회사들 역시 기업대출 확대라며 이같은 목적의식을 함께하는 듯 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갔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이 폭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자금지원이 아닌 투자 혹은 자산 증식 성격의 자금이 시장에 흘러들어갔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교묘한 금융회사의 말장난이 들어가있다.

은행들은 부동산 PF에 자금을 공급하면서 이를 '기업대출'로 포장했다. 부동산PF 대출은 서비스업 혹은 건설업에 대한 대출로 잡히기 때문에 기업대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비판을 받지는 않았다. 현재 부동산 PF 연체율이 높다고 지적받는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역시 이를 '기업금융' 혹은 'IB(투자은행)' 강화라고 포장, 자금을 공급했다. 모두가 '위기극복'을 외치던 사이 금융회사들은 이에 동조하는 듯 하면서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는 곳에 자금을 집중공급했다는 얘기다. 

부동산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를 했는가에 대해 되묻는다면 금융회사들은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금리'흐름에 대한 전망을 보면 그렇다. 부동산 PF 대출이 한창 늘어나던 2021년 들어 코로나19 대유행이 서서히 종식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금리로 인한 고물가 충격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세계 주요국은 물론 한국은행 역시 서서히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다시금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금리 상승은 부동산 시장엔 부정적 요인이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PF에 대한 리스크도 커진다. 사업이 진행중일 경우 막대한 자금을 금융회사로부터 차입해 시행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자부담이 늘어나면서 점점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또 분양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하거나 분양성적이 좋지 못할 경우 자금 회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들은 부동산 PF 시장에 자금을 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부동산 PF를 통해 자금을 투입한 사업장의 '사업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가도 따져봐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자금조달이 수월해진 건설부동산 업계는 어찌보면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로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기간동안 전세사기, 깡통전세, 미분양 등 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지만 자금조달이 '역대급'으로 쉬운 시기를 놓치기 어려웠을테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에 대한 신호는 금융회사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금융회사들 역시 2021년 이후로는 부동산PF 시장의 위기가 커질 요인들을 인지하고 대응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투입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회사들이 '단기이익'을 지나치게 좇았기 때문이다. 취재 차 만난 부동산 PF 관련 여신업무를 담당했던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당장 부동산 PF에 돈을 대면 곧장 한 해 실적을 채울만큼의 이자수익이 발생했던 상황"이라며 "당시에도 사업장의 사업성 평가가 다소 미흡했지만 일단 자금을 투입해 단기성과를 내자는 인식이 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을 정도다. 

부동산 PF가 우리나라 전체 금융시스템 및 경제를 흔들 위기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관측이다. 하지만 이에 안심할게 아니라 보다 면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번에 불거진 부동산PF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시기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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