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명물 ‘지프니’, 없애기 쉽지 않네
필리핀 대표 교통수단 ‘지프니’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려는 정책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닛케이아시아가 보도했다.
기다란 지프처럼 생겨 뒤가 열린 형태의 지프니는 필리핀에서 가장 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특정 노선을 따라 달리면 승객들이 차량 뒤로 타고 내리는 식으로 운행한다. 지프니를 소유한 기사의 개인사업 형태로 운영돼 왔다.
필리핀 정부의 공공 유틸리티 차량 현대화 정책(PUVMP)에 따라 올해부터 필리핀 내 모든 공공 유틸리티 차량(PUV) 운영자와 운전자는 리튬 이온 배터리 또는 규정을 준수하는 엔진으로 구동되는 현대식 차량을 보유한 협동조합에 가입해야 한다. 또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 유럽의 ‘유로 4’ 표준을 따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개별 PUV 기사는 더는 차량을 소유할 수 없고, 대중교통으로 운행할 수 있는 면허 또한 보유할 수 없다. 차량 소유권, 번호판 및 면허는 기사가 아닌 협동조합으로 이전된다. 최신 PUV의 가격은 최소 280만페소(약 6583만원)에 달한다. 전환 신청 기간은 지난달 31일로 끝났으며, 필리핀 정부는 이달 말까지 유예 기간을 뒀다. 필리핀 교통 당국은 마닐라 수도권에선 40%, 전국에선 70%의 지프니가 협동조합 가입을 신청한 것으로 추정했다. 약 4만2000대가 이미 사용이 중지된 상태다.
정책이 시행 궤도에 올랐으나 지프니 기사들의 반발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필리핀 정부는 지프니를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지프니는 대개 수입한 중고 디젤 엔진을 사용하다 보니 대기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지프니 기사들의 파업과 저항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도 수도 마닐라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정책 시행 일자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재차 밝힘에 따라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연말 시위를 주도한 지프니 기사 단체의 모디 플로란다 대표는 정책이 “수천명의 생계를 빼앗고 통근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고 밝혔다. 이어 “하루에 보통 400페소를 버는 기사들로선 새 PUV의 가격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단체의 마르 발부에나 대표 역시 “차량 비용은 내가 내는데 자산 소유권과 통제권은 협동조합이 갖는다는 점이 부당하다. 협동조합의 간단한 결정만으로 나는 조합에서 퇴출될 수 있고 내가 산 자산은 그들이 가질 것”이라고 SCMP에 밝혔다. 그는 “정부가 이러한 소유권 문제를 수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 싱크탱크는 이번 정책이 지프니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차량 현대화 비용과 대출금 상환 부담이 요금에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페소 수준이었던 지프니 요금이 5년 안에 최대 50페소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우려가 이어지자 필리핀 정부는 지프니 기사 일자리 상실과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필리핀 교통부는 “통근자와 운전자를 위해 시행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소수 집단이 공포를 심으려는 의도로 허위사실을 퍼뜨린다”고 반박했다.
하노이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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