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3개월 만에···가자지구 주민 100명 중 1명이 숨졌다
사망자의 3분의 2가 여성·어린이
휴전 협상은 중단…희생 더 늘 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3개월 만에 가자지구 주민 100명 중 1명 이상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동 등 민간인 희생자는 금세기 벌어진 전쟁 중 전례 없는 규모로 치닫고 있다. 지난 3개월간 가자지구 내 민간인 사망자는 2년 가까이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민간인 사망자 규모를 일찌감치 2배 이상 뛰어넘었다. 20년간 미국과 동맹국이 탈레반 소탕을 위해 벌인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1년)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 규모 역시 추월했다.
8일(현지시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전날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지난해 10월7일 개전 이후 이달 7일까지 3개월 동안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가 최소 2만2835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 약 227만명 중 1% 이상이 이번 전쟁으로 숨진 것이다. 부상자는 5만8416명으로 가자지구 인구 40명 중 1명 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습으로 매몰돼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까지 합치면 사망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가자지구 내 병원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사망자 수를 파악한다. 사망자 통계는 병원에서 사망이 확인된 이들만 집계해 신원 불상 시신이나 병원에 이송되지 않은 매몰자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어린이 희생도 컸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는 최소 9000명으로, 어린이 120명 중 1명 꼴로 숨졌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전체 사망자의 3분의 2가 여성(최소 5300명)과 어린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군도 지난달 개전 이후 8000여명의 하마스 대원을 사살했다며 ‘무장세력 1명당 민간인 2명 꼴’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의 사망자 통계는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인 사망자를 아동·여성(약 1만4300명)으로 한정해 통계를 보수적으로 집계해도 이례적인 규모다. 단 3개월간 벌어진 전쟁이 2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민간인 사망자(약 1만2400명) 규모를 뛰어 넘었다. 민간인 희생자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자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상태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전날 성명을 통해 전쟁 발발 이후 매일 평균 10명 이상의 어린이가 폭발 등으로 한쪽 혹은 양쪽 다리를 절단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봉쇄와 포위 공격으로 가자지구 내 의료시스템이 붕괴해 마취제와 의약품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어린이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이스라엘이 세계 언론의 가자지구 접근을 봉쇄한 상황에서 가자지구 현장 소식을 전해온 팔레스타인 언론인들도 다수 희생됐다. 국제언론단체인 언론인보호위원회는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 7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언론인보호위원회는 “이는 1992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악의 희생자 규모”라고 밝혔다.
전쟁과 봉쇄 장기화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의 85% 이상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개전 초기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북부 소개령으로 북부 주민 대다수가 중부 및 남부 지역으로 대피했다. 여기에 이스라엘군이 일시 휴전이 종료된 지난달 초부터 피란민이 밀집한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 등 남부 지역에서마저 시가전을 본격화하면서 피란민 규모는 더욱 늘어났다. 주민들은 연이어 피란처를 잃고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피란민이 밀집한 남부 지역에선 위생 시설 부족으로 전염병과 호흡기 질환이 확산하고 있다.
유엔 긴급구호 책임자인 마틴 그리피스는 최근 가자지구 주민들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식량 불안에 직면했다”며 “기근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경고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도 “앞으로 몇주 안에 최소 1만명 이상의 5세 미만 아동들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자 미국은 이스라엘군에 공세 국면 전환을 요구해 왔고, 이날 이스라엘군은 ‘고강도 전면전’에서 ‘저강도의 타깃형 전투’로 전쟁을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수개월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가자 주민들과 이스라엘 인질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인 휴전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그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카타르 등 주변국의 중재로 물밑 휴전 협상을 벌여 왔으나, 지난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하마스 서열 3위인 살레흐 알아루리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에 사망하면서 하마스가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 11월 말 7일간의 일시 휴전에 따라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105명이 석방됐지만, 현재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인질 136명이 억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는 이날 이스라엘에서 납치한 인질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 등의 기습 공격 당시 납치된 이스라엘 남성 엘라드 카치르(47)는 이 영상에서 “전쟁을 멈추고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호소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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