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시 미군 들어오는 길목' 동중국해 봉쇄 준비하는 중국 [무기로 읽는 세상]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중국이 최근 파격적인 군부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해 8월 전격 숙청된 리상푸 국방부장의 후임으로 해군사령관 출신의 둥쥔 상장을 임명하고, 해군사령관 자리에는 잠수함 장교 출신인 후중밍 상장을 앉힌 것이다. 둥쥔 상장의 기용으로 중국군 최고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중앙군사위에는 6명의 상장급 장성 중 3분의 1인 2명이 해군 몫이 됐고, 해군이 실질적인 군령권과 군정권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의 합동참모본부 격인 연합참모부 수장이 육군이기는 하지만, 정치장교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공산권 군대의 특성상 정치공작부 주임이자 시진핑 국가주석의 가신그룹 인사로 분류되는 먀오화 해군상장이 사실상의 군령권을 쥐고 있고, 이번 둥쥔 상장 임명을 통해 군정권을 갖는 국방부 수장 자리까지 해군이 가져가게 됐기 때문이다.
중국 군부 장악한 해군…건함 전략도 수정
공교롭게도 이번 인사 조치와 때를 같이해 중국 건함 전략의 수정도 관측되고 있다. 당초 중국은 2035년까지 항공모함 5척을 중심으로 한 대양함대를 건설해 서태평양에서 미국과 정면승부를 보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드러내 왔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 및 예산평가센터(CSBA)가 중국의 건함 속도와 예산 배정 추이를 면밀히 분석해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초 중국의 계획은 2031년까지 최소 5척의 항공모함과 10척의 전략원자력잠수함을 중심으로 하는 함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003형 항모 건조 사례를 생각해보면 착공에서 진수까지 약 55개월이 소요됐는데, 후속 항공모함 건조에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가정할 경우 2031년까지 항모 5척 체제를 완료하려면 이미 003형 항모 ‘푸젠’은 실전 배치를 앞둔 상태여야 하고, 후속 항공모함인 004형과 005형은 착공에 들어갔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차세대 항공모함용 원자로 개발 사업을 2020년 6월에야 착수했다. 이 사업의 완료 시점이 2030년이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2035년 이전에는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의 항모 전력인 ‘5척 체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 안팎의 상황도 최근 몇 년간 빠르게 달라졌다. 대외적으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무능이 예상보다 큰 후폭풍을 불러오면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박살 났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전략적 억제에 실패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지 못했고, 집권 초부터 이란과 후티의 자금줄과 불법 무기 확산을 풀어주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기반을 만들어 버렸다. 두 개의 전쟁에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해 온 미국은 미군의 군사대비태세가 최악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카슈끄지 사건·F-35 판매 거부 등 이해하기 어려운 실책들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와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중동의 군사강국이자 페트로달러 체제로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들 두 국가가 미국과 등을 돌리면서, 미국의 패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대외적 환경으로는 중국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호기가 조성된 것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 벌이는 중국의 내·외부 상황 변화
내부적으로는 막대한 부채로 인한 리스크가 패권국 도약을 앞둔 중국의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 성장에서 25~30%는 부동산 거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수십 년간 부동산을 중심으로 추산 불가능할 정도의 천문학적 부채가 누적되고, 이로 인한 경기 둔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부유’라는 반시장적 정책까지 발표되며 외국 기업과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중국 입장에서는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203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상정해 군사력을 건설하다가 계획을 10년 이상 앞당겨 당장 승부를 보는 것은 중국에 대단히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다. 정면승부 대신 변칙적인 전략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그 전략 구현을 위해 해군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해군 수장 자리에 잠수함 장교 출신을 기용했다. 둥쥔에 이어 새 해군사령관이 된 후중밍 상장은 대부분의 군 생활을 잠수함에서 지낸 수중전 전문가다. 그리고 그의 등판 시기에 맞춰 중국은 대량의 재래식 잠수함 동시 건조·배치에 나섰다. 이른바 ‘스텔스 잠수함’이라고 화제가 됐던 최신형 디젤-전기추진 잠수함, 039C형이 그것이다.
미국과 군사적 충돌 대비해 변칙 전략 쓰는 중국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중국이 2030년대까지 항모 5척, 전략원잠 10척으로 구성된 대양함대를 건설하려 했다면, 지금은 그 항모와 전략원잠을 호위할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을 집중적으로 건조해야 하는 시기다. 재래식 잠수함은 배터리 한계 때문에 속도·항속거리가 모두 부족해 항모나 전략원잠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배들을 따라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공격원잠 건조 속도를 조정하고, 대신 039C형이라는 재래식 잠수함 전력을 크게 증강해 동중국해를 담당하는 동해함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재래식 잠수함은 방어용 잠수함이다. 멀리 항해하기 어려운 대신 물속에서는 엔진을 끄고 배터리 동력만으로 움직일 수 있어 매우 조용하며, 덩치가 작아 수중 매복 작전에 유리하다. 특히 중국의 039C형은 기존 039 계열 잠수함에 비해 은밀성과 타격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설계됐기 때문에 이러한 수중 매복 작전에 더할 나위 없이 특화돼 있다. 여기서 운용하는 YJ-18 초음속 대함 미사일이나 Yu-10 중어뢰는 사거리가 길고, 미사일 자체의 파괴력도 높은 편이어서 항모나 상륙함과 같은 대형함 요격에 효율적이다.
중국이 이러한 자산을 동중국해에 집중 배치하는 것은 이곳이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의 한반도·중국 진입 길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다양한 대함탄도미사일과 공대함 미사일 전력으로 이 해역에 강력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을 펴놓고 있다. 미 항모전단이 하늘에서 날아오는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며 대공전투에 집중하는 사이, 동중국해에 매복해 있는 재래식 잠수함들이 수중에서 기습 공격을 가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중’에 국한돼 있던 중국의 A2/AD 전략이 이제는 ‘수중’으로까지 확장된, 입체적 차단 전략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잠수함 등 비대칭 전력 우선 전략은 나치 독일과 유사
대규모 함대를 건설해 함대 결전을 벌이려다가 전쟁이 임박하자 잠수함과 같은 비대칭 전력 우선 전략으로 급히 수정한 중국의 최근 동향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다. 당시 독일도 1948년까지 이른바 ‘Z계획’으로 명명된 대함대 건설 계획을 추진했지만, 계획된 일정보다 9년이나 빠른 1939년 전쟁이 터지면서 기존 계획을 폐기하고, 대량의 U-보트를 건조해 통상파괴전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꾼 바 있다. 당시 독일도 잠수함 장교였던 카를 되니츠 제독을 기용하고, U-보트를 대량 건조해 대서양에 내보냄으로써 연합군 측의 군함 148척과 수송선 2,759척, 그리고 거기 타고 있던 20여 만 명의 병력과 1,412만 톤의 물자를 수장시켰다.
한·미·일 3국은 중국의 이례적인 군 수뇌부 인사와 재래식 잠수함 집중 건조로 방향성이 바뀐 건함전략의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 3국은 중국이 단독으로, 또는 북한과 손을 잡고 동중국해에서 A2/AD를 수행할 경우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고, 현재 각국이 계획하고 있는 무기 도입 사업 일정들을 고려해도 당분간은 대응 전력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것이 미중 패권 경쟁 상황에서 벌어질 일이라면 한국은 한발 뒤로 물러나 관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남조선 평정’과 같은 무력통일 전략을 다시 전면에 들고 나오는가 하면, 김여정도 그 어느 때보다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동중국해 해상교통로 안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유사시 한국은 미국의 항모나 상륙함 등 전략자산의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쟁이 발발하면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참극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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