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사로잡힌 사람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미국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의 정신분석 과정에서 만들어진 진단명입니다.
1980년 뉴욕에서 활동하던 정신분석의 카임 샤탄과 로버트 J. 리프턴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일부 군인의 정신을 분석해 하나의 진단명으로 분류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만나며 정신분석을 시도한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 (을유문화사 펴냄)에서 톰이라는 변호사 사례를 통해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야기를 합니다. 몸은>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리재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미국에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의 정신분석 과정에서 만들어진 진단명입니다. 1980년 뉴욕에서 활동하던 정신분석의 카임 샤탄과 로버트 J. 리프턴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일부 군인의 정신을 분석해 하나의 진단명으로 분류했습니다. 진단명의 공통 증세는 ‘공포와 무기력함에 압도당한 채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895년 “이 사람은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군”이라고 했던 증세입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만나며 정신분석을 시도한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을유문화사 펴냄)에서 톰이라는 변호사 사례를 통해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야기를 합니다. 톰은 마음이 통했던 전우를 전쟁에서 잃고 귀국한 뒤,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적으로 변하고, 그런 자신이 무서워 부정적 감정이 솟아오를 때면 호텔에서 숙박하곤 했습니다. 또 다른 해군 출신 그룹은 필자인 의사에게 해병 군복을 선물합니다. 반 데어 콜크는 참전군인들이 그 일이 10년 전에 일어났든 40년 전에 일어났든 언제나 그날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진단명을 만드는 데 기여한 ‘잔혹행위에 관한 환자의 보고’라는 논문에서 헤일리 박사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들이 잔혹행위를 돌이켜보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받은 고통과 마주하는 일도 충분히 괴롭지만,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이 한 일 혹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수치심에 훨씬 더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들은 그 당시 자신이 느낀 두려움과 의존성, 흥분,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극도로 경멸한다.”(위의 책)
이번에 자신의 베트남전 전투 경험을 고백한 송정근씨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그런 전투를 하다보면 그냥 막돼먹어버리겠거든요. 예를 들어 누가 ‘너 나쁜 놈이라더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절대 못 참습니다. 당장 쫓아가서 동네 사람들 모인 사랑방 벽에다 그냥 칼을 쫙 던져버려요. 그럴 정도로 우악스러워지고 겁없이 구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전쟁 지역에서 복무한 군인의 4분의 1가량이 PTSD를 앓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또 다른 통계는 미국 홈리스(노숙인)의 26%가 참전군인이라는 것입니다. 독립다큐멘터리 <사도>를 만든 송대일씨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집회에서 본 이야기를 이렇게 합니다. “이거 좀 사과하고 가면 참 좋을 텐데, 근데 우리 동료들도 거기 많이 죽었어 그러면서 막 우세요.” 송정근씨는 이런 말도 덧붙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그런 병사들을 위한 상담치료도 했다는데, 그때야 그런 건 우리나라에선 꿈도 못 꿨으니까요.”
우리는 참전군인이 아스팔트에서 ‘애국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치적으로만 이용해왔습니다. ‘미안해요 베트남’ 제2장은 참전군인의 상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기억을 고백하고 그 기억을 개인의 수치심이 아니라 역사 속으로 위치시켜야 합니다. 송정근씨가 참여한 1966년 참전 초기부터 학살이 이뤄진 데 어떤 배경이 있는지도 꼭 밝혀야 합니다. 송정근씨는 아들이 이라크 파병을 상담할 때 극렬하게 반대하며 자신의 과거를 알려줬습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가 추상적인 단어로만 쓰이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하는 메시지 역할을 하기 바랍니다. <한겨레21>은 베트남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연락 주십시오.
2024년은 <한겨레21> 창간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겨레21>은 1월2일부터 전자책 서비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96.html)를 선보였습니다. 전자책 서비스에는 <한겨레21>의 역사가 구현돼 있습니다. 정기구독자라면 제966호(2013년 6월24일자)부터 열람이 가능합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와 역사적으로 잇닿는 고경태 기자의 2013~2014년 연재 ‘1968년 그날’ 등을 지면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