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외계+인>을 재미없게 본 근본적인 이유를 알려주겠다

이동윤 영화평론가 2024. 1. 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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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의 무비언박싱] 'B급 영화' <외계+인> 이 주는 장르적 쾌감

장르영화의 성패는 해당 작품이 얼마나 장르적 법칙을 충실히 따르면서 동시에 장르적 의외성으로 관객에게 재미를 주느냐에 달려있다. 법칙을 따르며 동시에 배반해야 하는 장르의 숙명은 1920년대, 할리우드 산업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한 이후 100년 동안 이어져 온 영화 창작자와 관객의 힘겨루기로부터 비롯한다. 관객은 언제나 흥미롭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영화 속에서 만나길 원한다. 반면 영화 창작자들은 관객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작품을 가급적 효율적인 시스템 안에서 만들길 원한다. 후자가 장르의 법칙을 만들어냈다면 전자는 장르의 의외성으로 연결된다. 물론 관객과 창작자가 항상 법칙과 의외성으로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관객 또한 장르적 법칙을 기대하고 작품을 선택하기도 하며 창작자들 또한 자기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독창성을 획득할 수 있길 바란다. 문제는 작품의 성패 원인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장르영화만의 고유성이 매번 고려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장르 담론으로 서론을 던진 이유는 <외계+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오는 1월 10일 공개되는 <외계+인 2부>(2024)가 과연 <외계+인 1부>(2022)의 초라한 흥행성적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 2부를 모두 합쳐 700억 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제작비가 투입되었고 <외계+인 2부>만 순제작비 370억이 들었으니 전작의 흥행 부진을 극복하려면 총 130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해야만 한다. 이렇게 <외계+인 2부>가 떠안은 부담감은 전적으로 <외계+인 1부>가 공개되었을 때 형성된 작품에 대한 두 가지 반응으로부터 비롯한다. 첫 번째는 한국 블록버스터의 위기, 더 나아가 한국 영화 산업 위기에 대한 논쟁이었고 두 번째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수백억이라는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가 이익을 얻지 못한 채 흥행에서 참패했다면 이는 산업에 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에서 이런 위기가 과연 없었던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영화의 흥망성쇠를 경험해 왔으며 동시에 이를 극복한 여러 경우를 만나왔다. 이러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외계+인>의 흥행 실패는 분명 산업적으로 큰 부담이었음이 분명하나 이를 '위기'라는 단어로 설명해야 할 정도의 사안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이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주장을 펼쳐야 함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글은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이쯤에서 생략한다.).

대신 <외계+인>에 대한 평가는 두 번째 논쟁, 작품의 완성도로 집중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외계+인>은 작가주의를 표방한 예술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외계+인>은 대자본을 투입해 반드시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하는 분명한 목표를 지닌 대중영화다. 물론 <타짜>(2006), <도둑들>(2012)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최동훈 감독은 충분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관객에게 펼쳐 보여 인정받았고 이로써 명실공히 '작가'의 반열에 오른 감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작품과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같은 작가주의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두 감독이 추구하는 작가적 세계는 전혀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에게 영화는 자신의 반영이며 동시에 자신이 바라본 세계의 반영이다. 반면 최동훈 감독에게 영화는 급전과 반전의 세계이며 긴장과 서스펜스로 가득한 세계다. 결국 <외계+인>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바라보고 비평하듯이 판단해서는 안 되는 영화다. 오히려 대중영화로서 <외계+인>이 갖는 특수성을 논의해야 이 작품이 지닌 색깔을 좀 더 분명하게 벼려낼 수 있다.

긴 길을 돌아 이제야 우리는 <외계+인>이 대중영화라는 진실에 안착했다. 이제 대중영화로서 이 영화가 입고 있는 옷, 그러니까 장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흥미롭게도 각종 플랫폼이 정의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먼저 네이버와 티빙, 왓챠, 웨이브는 모두 '액션'이라 간단히 정의했다. 액션은 영화의 탄생과 맥을 함께 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장르다. '액션 Action'은 움직임을 뜻하는 단어로 행동, 동작을 의미하고 '활동사진 Moving Image'이라는 영화의 본질적 속성을 가장 잘 반영한다. 이를 장르화한 액션 장르는 최초 움직이는 사진에 열광했던 대중의 욕망을 그대로 품어 안고 가장 화려하고 극적이며 다양한 영화적 움직임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존 윅 시리즈,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같이 현란한 대규모 '액션' 시퀀스가 서사를 결정짓고 캐릭터들의 욕망을 끌어 나가는 작품들을 일컬어 액션 영화라고 말한다.

▲<외계+인 2부> ⓒCJ ENM

그렇다면 우리는 <외계+인>을 액션 영화라 호명할 수 있을까? 분명 <외계+인>에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가 등장한다. 지구의 대기를 외계 행성의 대기로 만들기 위해 하바를 터트리려는 외계인들과 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인간들의 싸움은 재난영화의 형식을 빌려 화려한 스팩터클을 확보한다. 외계인들을 저지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감금해 놓은 이들과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외계인들의 대결은 무협영화 형식 속에서 긴장감을 획득한다. 재난영화와 무협영화가 액션 장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해 본다면 <외계+인>이 액션 장르의 자장 하에 놓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외계+인>의 액션 요소는 작품의 형식을 결정하진 않는다. <외계+인>이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작품의 핵심은 외계인이 지구의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죄수를 심어놓았다는 세계관. 이를 지키고 관리하기 위해서 가드(김우빈)와 썬더(목소리 김대명)가 시간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는 설정으로부터 비롯한다. 그 토대 아래 이안(최유리/김태리)과 무륵(류준열),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의 협력이 가능할 수 있으며 이들이 펼치는 액션 또한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외계+인>을 액션 장르로 호명하는 것은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외계+인>의 장르를 단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다음은 '액션/판타지/SF'로, 나무위키는 'SF/액션/무협/다크 판타지/코미디/스페이스 오페라/사극'과 같이 세부 장르들을 모두 표기하여 이 작품이 혼합장르임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제목이 표방하는 그대로 이 작품을 SF 장르로서 상정해 볼 수 있다. 외계인이 인간의 뇌 속에 죄수를 심어 놓았다는 설정, 외계인을 막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모두 SF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온 관습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SF 영화로서 추앙받는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외계+인>의 SF적 요소들은 어딘지 한 발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먼저 <외계+인>은 외계인을 가장 최전선에 내세우고 있으나 외계인과 관련된 정보에는 관심이 없다. 행성의 좌표와 이름, 외계인의 명칭과 같은 구체적 정보가 영화 속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행성 대기와 지구의 대기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 그들의 행성은 지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 명시될 뿐이다. 시간 여행 설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평행우주론과 같은 과학 이론이 <외계+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2022년의 서울과 630년 전 고려시대는 단단한 포털로 연결되어 있고 포털이 열리는 순간이라면 언제든 같은 시간대로 여행이 무리 없이 진행된다. 디즈니 플러스의 <로키>가 펼쳐 놓은 방대한 평행우주의 세계를 <외계+인>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반면 <외계+인>은 오직 단순하게 설정된 SF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그 세계 속에서 목표를 이루려는 인물들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극복 불가능한 일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장르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배반이 발생한다. SF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 관객에게 <외계+인>은 지극히 미완의 장르로 다가온다. 무협 장르 또는 액션 장르를 기대한 관객에게 <외계+인>은 과도한 특수효과로 점철된 비현실적인 서사적 요인들로 인해 몰입할 수 없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 어떤 장르를 고려해 본다고 하더라도 <외계+인>은 개별 장르가 지닌 고유한 기대치를 배반하며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는데 열을 올린다. 애초에 <외계+인>이 장르적 규칙을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패한 장르성은 충분히 의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계+인>은 B급 장르영화로 규정되어야 한다.

B급 영화는 할리우드 산업 시스템 내에서 짧은 시간 동안 다수의 비슷한 장르 영화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빠른 시간 동안 적은 예산으로 상품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제작된 B급 영화는 주로 무명 영화인이 감독이 되기 위해 만드는 연습 작품으로 인식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특정 B급 영화들이 A급 영화(상업영화)보다 더 큰 수익을 내기 시작하자 제작자들은 B급 영화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다. 저급한 완성도가 키치한 미학적 가치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B급 영화의 키치한 속성은 해당 장르 영화의 관습들을 표피만 가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뒤틀어 버리면서 발생한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수효과는 조잡할 수밖에 없고 빠른 시간 동안 제작해야 했기에 서사적 완결성 또한 부족하다. 대신 B급 영화는 장르적 한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며 그 결여가 일종의 실험이자 전복으로 받아들여지도록 관객을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장르 혼합과 서사의 인과성 부족이 발생하고 고급문화가 가치 삼는 기준들이 철저히 부정되며 새로운 대안을 세워나간다. A급 영화들이 가장 경계했던 지점을 역설적으로 자신들만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외계+인>은 정확히 B급 영화를 지향한다. <외계+인>은 발생하는 사건들과 인물들 사이의 인과성을 그리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 병원 건물 전체를 인질 삼아 그곳의 모든 사람 뇌 속에 죄수를 감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지만 이를 눈치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지구에 외계 비행체가 다가와도 국가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적 상황에서도 경찰과 군대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이다. 고려시대로 상정된 먼 과거는 장풍을 쏘고 변신을 일삼는 무협의 세계다. 현실로부터 괴리된 서사적 요인들은 인물들의 욕망도 납작하게 추상화한다. <외계+인>의 모든 인물은 단일한 욕망 속에서 행동하고 그 욕망은 전부 지구를 빼앗는 것과 지키는 것으로 대립하여 집중된다. 가드와 선더의 보호 속에서 살아가는 이안이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알아내려는 욕망은 도심지에서 하바를 터트리려는 외계인을 막기 위해 출동하는 차 안에서 손쉽게 해소된다. 죄수들을 감시해야 하는 임무와 이안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드/썬더의 고뇌는 휘몰아치는 재난적 상황 속에서 한 번도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은 채 사건의 해결을 통해 해소된다. 흑설과 청운이 신검을 획득하려다 갑자기 외계인을 막기 위한 대의를 따르는 이유도, 무륵이 현상수배범들을 쫓다가 신검을 쫓게 되는 목표의 변화도 외계인과 신검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액션 시퀀스들 속에 휘발되어 설득력 없이 흩어진다.

대신 <외계+인>은 외계인과 인간의 대립, 지구를 빼앗으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이 강렬한 에너지로 충돌하는 대립의 스펙터클에 집중한다. 하바가 터지는 시간이 데드라인으로 설정되는 순간 서사는 속도감 있게 이 종말의 시간대로 쉼 없이 내달린다. 그 속도감이야말로 <외계+인>이 지닌 가장 큰 무기다. <외계+인>이 외피로 끌고 들어온 SF, 무협, 액션 장르적 요인들은 이 속도감을 더욱 돋보이게끔 하고 강화하기 위한 극적 장치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해 <외계+인>은 스펙터클을 사실성이 아닌 풍자와 유머를 기반으로 세워 올린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역사적 사실, 또는 동시대적 현실성을 기반으로 핍진성을 높여 관객의 극적 몰입을 강화하는 태도와 정반대다. <외계+인> 1부가 공개되었을 때 다수의 관객이 이 작품을 당혹스럽게 받아들인 원인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관객은 <외계+인>을 블록버스터 SF 장르 영화로 기대했으나 정작 <외계+인>이 안겨준 것은 B급 장르영화의 스펙터클뿐이었던 셈이다. <외계+인>의 B급 장르적 스펙터클이야말로 이 작품의 정수임을 수용한다면 <외계+인>은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느껴볼 수 없었던 장르적 쾌감을 전달하는 훌륭한 장르영화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B급 영화가 저급하고 미완의 완성도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급문화로부터 벗어났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해방감을 관객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B급 영화가 주된 무기로 삼고 있는 키치함은 자본주의 상품성을 전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외계+인>은 그 키치함을 바탕으로 한국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전복하고 한국 장르영화의 경계를 확장했다. 한국 영화계가 SF 장르에 대한 상상력을 <더 문>(2023)과 같이 개발 가능한 우주로 투영하는 사이 최동훈 감독은 B급 장르로 확장을 시도했다. 누군가는 무모한 시도였다 비판할지언정 <도둑들>(2012)과 <암살>(2015)을 통해 두 번의 천만 관객을 모은 최동훈 감독에게는 해볼 만한 시도였던 셈이다. 1부의 흥행 참패와 여러 비판적인 의견을 과연 2부가 넘어설 수 있을지는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외계+인>이 남긴 족적은 한국영화사의 한 장면으로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이동윤 영화평론가(dongyunlee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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