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채상병’ 인권보고서에…“이건 정부·여당 깐다는 것”

고경태 기자 2024. 1. 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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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동안 안건 1건도 못 끝낸
올해 첫 인권위 전원위원회
1월8일 오후 인권위 14층 전원회의실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원위원회에 인권위원 11명이 모두 참석했다. 그러나 회의는 파행을 면치 못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책상 두드리지 마세요.” “언성 높이지 마세요.”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 불참을 선언했다가 철회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최고 의사결정 회의인 전원위원회가 40여일만인 8일 오후 인권위원 11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지만, 3시간 넘게 난상토론을 벌이고도 고성 등이 오가며 안건 의결은커녕 보고 안건조차 매듭을 짓지 못했다.

이날 예정된 안건은 ‘2023 인권위 인권보고서 발간추진 계획’과 ‘소위원회에서 의견불일치 때의 처리’ 등 보고 및 의결 안건 총 4개였다. 그러나 인권보고서 발간과 관련한 자문위원회를 두고 김용원 상임위원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을 하면서 위원들간 긴 공방을 벌였다.

김 상임위원 주장은 인권위법상 자문기구를 두려면 운영규칙을 두고 진행해야 하는데(인권위법 15조), 인권위가 운영규칙 없이 진행했기 때문에 “보고서는 위법이자 편법”이라는 것이다. 이충상 상임위원과 한석훈 위원도 같은 논리로 가세했다.

인권위는 2001년 출범 뒤부터 매해 연간 활동내역을 정리한 연간보고서를 발행해왔다. 2021년부터는 이에 더해 매해 인권상황을 평가하는 인권상황보고서를 발행 중이다. 통상 인권상황보고서 발간을 위해 인권위는 여성·장애·이주·지역 등 각 영역의 인권 전문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2~3차례의 회의를 통해 목차와 주제, 초안에 대한 자문을 받아왔다. 자문위원회는 현직 인권위원 5명과 외부 인권전문가 등 16명이며, 보고서 집필은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사무처 직원들이 해왔다.

송두환 위원장은 “발간 자문위원회는 한시적이고 임시적인 기구로 상설 자문기구와는 다르지만, 근거가 되는 운영규정이 필요하다면 수용하겠다”면서도 “운영규정 만들 때까지 사무처 직원들이 인권보고서 준비작업을 미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규선 상임위원도 “차후 운영규칙으로 발간 자문위원회의 상설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위 내 상설 자문기구로는 인권정책자문위원회와 상임위 소속의 사회권 전문위원회, 북한인권전문워원회, 소위원회 소속 자유권 제1전문위 등이 있다.

1월8일 오후 인권위 전원위원회를 앞두고 전원회의실에 앉아있는 김용원 상임위원 뒤로 이충상 상임위원이 입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용원 상임위원은 “발간 자문위원회를 자의적·임시적 자문기구로 얼렁뚱땅 운영해왔다”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했고, 이충상 상임위원은 여기에 더해 “지난해(2022년) 인권상황보고서도 편파적이다. 이번에도 확실하게 편파적으로 하려고 내려는 것”이라면서 인권보고서의 목차를 문제삼았다.

이 상임위원은 강제동원, 게임업계 사상검증, 해병대 고 채상병 순직사건 등 2023 인권보고서의 제목들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며 “웃긴다. 이건 정부 여당을 신랄하게 깐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깐다는 거다. 속였다. (보고서 발간을)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무처 관계자의 인권상황보고서 추진계획 보고 직후에는 “사진, 도표, 그래프 등을 잘 살렸다. 아이디어 좋다”며 웃으면서 칭찬까지 건넸던 이 상임위원은 김용원 상임위원의 비판이 시작되자마자 돌변해 인권보고서를 “좌편향됐다”며 깎아내렸다. 이 상임위원은 인권보고서 발간 예산 증액분이 깎인 것과 관련해서도 “왜 예산을 전용해서 하느냐”고 문제삼았다. 관련 예산은 현재 8천만원으로, 국회 예결위에서 7천만원 증액분이 반영되지 못하고 깎였다.

남 상임위원은 이충상 상임위원을 겨냥해 “자꾸 편향, 편향 하는데 이충상 위원이야말로 편향이다”라고 말했고, 원민경 위원은 이 상임위원의 발언과 관련해 “채상병 순직사건을 다루는 게 정권비판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군인권이 정권비판이냐”고 따져물었다.

이날 오후 3시에 시작한 전원위는 6시20분에야 끝났다. 유일하게 논의한 2023년 인권위 인권보고서 발간추진 계획 안건은 다음 전원위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한수웅 위원은 “회의를 효율적으로 하자”고 했다. 원민경 위원은 “부정적인 언어를 긍정적인 언어로 바꿔쓰면 안되겠냐”고 했다. 송두환 위원장은 “오늘 상정 안건 4건 중 한 건도 처리 못했다. 안건 적체가 심각하다. 이거 말고도 대기중인 안건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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