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복직 아나운서 "오늘도 아무 지시가 없어 책상에 앉아있었다"

김예리 기자 2024. 1. 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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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방송, 이산하 아나운서 '단시간 편집요원' 배치 부당 전직 논란
'자리도, 예산도 없다' 밝혔지만 과거 맡던 방송 또다른 프리랜서에
2년째 근로계약 체결 안 해…'고사시켜 나가게 하는 소모전' 비판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울산지역 지상파 민영방송사 UBC울산방송이 '무늬만 프리랜서'로 부당해고를 인정 받고 복직한 이산하 아나운서와 2년 넘게 근로계약을 맺지 않다 단시간제 편집요원에 발령했다. 이 아나운서와 정식 계약을 거부하다 최근 이 아나운서 방송을 폐지한 데다, 과거 방송은 또다른 '프리랜서'에 맡기고 내린 조치여서 부당전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UBC울산방송은 지난 5일 이 아나운서를 편집제작팀 편집요원으로 발령했다. 앞서 UBC가 이 아나운서에게 맡겼던 유일한 방송프로그램 아침뉴스 날씨를 올 1월부로 폐지한 뒤 내린 조치다. 이 아나운서는 8일 “방송이 1월1일부로 폐지된 뒤 일 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직무 변경을 통보 받은 뒤 출근한 오늘(8일)도 아무 지시가 없어 책상에 앉아있었다”고 말했다.

▲ⓒGettyimages

UBC가 이 아나운서에게 통보한 직무는 편집제작팀의 편집요원이다. 오후 2시에 출근해 밤 8시30분에 퇴근하는 일정으로, 6시간 단시간제 근무에 휴게시간은 30분이다. 점심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앞서 UBC는 이 아나운서가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한 뒤 줄곧 그에게 6시간 단시간제 업무를 지시해왔다.

이 아나운서에 따르면 UBC는 발령 이유로 이 아나운서에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이 아나운서가 보도국장과 경영관리팀장에게 '입사 뒤 맡아왔던 방송 직무를 하겠다'고 밝히자 이들은 '네 자리는 없다'고도 했다고 한다.

이 아나운서 측은 이 같은 회사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UBC는 이 아나운서가 맡았던 주7일 2시간 새벽 라디오프로그램인 '이산하의 잠 못 드는 그대는' 의 경우 외주 비용을 들여 프리랜서에게 맡기고 있다.

▲이산하 아나운서가 UBC울산방송 아침뉴스 앵커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사진=U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이 아나운서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입사 이래 수행해온 직무와 무관한 일에 일방 통보한 데다, 그가 맡았던 방송 프로그램은 추가 비용을 들여 이어가고 있어 '보복성 부당전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는“MBC가 과거 파업에 참가했던 아나운서를 신사업개발센터, 스케이트장 관리 등 노동자의 고유한 기술과 지식과 무관한 직무에 배치했다가 인사권 남용이자 법적으로 부당한 배치임이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사안도 부당 전보로 판단할 여지가 커 보인다”며 “특히 회사가 방송제작 인력에 자리가 없지 않음에도 이같이 조치해 회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에 나선 아나운서에 '소모전'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했다.

이 아나운서는 회사의 이번 통보를 두고 “회사는 제가 계속 (UBC에) 다닌다면 앞으로도 방송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라고 했다”며 “나가라는 협박으로 느껴져 놀랍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했던 아나운서 업무가 정규직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업무라는 것을 인정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하루 빨리 정상적으로 차별 없이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UBC 측은 4~9일 이 아나운서에 복직 뒤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이유와 직무배치 등에 관한 회사 입장을 묻는 전화와 메시지에 응하지 않았다. 언론노조 UBC울산방송지부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무슨 일이든 맡겨 변화를 모색하자는 뜻에서 회사의 직무전환 통보에 일부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 아나운서는 2015~2021년 UBC울산방송에서 '프리랜서' 형식으로 날씨 방송, 아침뉴스와 정보프로그램 진행, 라디오 진행, 취재와 기사 작성 등을 맡아오다 지난 2021년 4월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노동위원회는 초심과 재심 모두 이 아나운서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울산방송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UBC울산방송 로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아나운서는 기상캐스터, 뉴스앵커, 라디오진행자, 취재기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는 모두 UBC가 그와 같은 업무를 제안한 데에 따른 것”이라며 “이 아나운서가 수행했던 뉴스진행 업무의 내용은 정규직 아나운서와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고 밝혔다.

UBC는 중노위 시정명령 이후 이 아나운서를 복직시켰지만 현재까지 3년째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사측이 '적격성이 부족하면 계약 해지할 수 있다' '노동자 귀책으로 사측이 배상 청할 수 있다' 등 일반 근로계약에 담기지 않는 독소조항을 빼달라고 했으나 이를 거부하면서다.

'방송을 만드는 노동자의 이름,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UBC는 노동위와 법원에서 노동자성이 인정된 노동자에 대해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프로그램 폐지하며 부당전보를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송에 대한 보복성으로밖에 볼 수 없어 여러 시민 사회단체가 울산방송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UBC는 이산하 아나운서가 제대로 된 정규직 아나운서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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