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전설-KIM 롤모델' 베켄바워, 향년 78세로 영면... "위대한 카이저(황제)가 떠났다" 축구계 애도 물결

박재호 기자 2024. 1. 9. 11: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타뉴스 | 박재호 기자]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왼쪽)와 펠레.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의 선수 시절 모습. /AFPBBNews=뉴스1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독일 매체 dpa통신, 빌트 등 복수 매체들은 9일(한국시간) 베켄바워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베켄바워의 가족은 dpa통신에 성명을 보내 "아버지이자 남편인 베켄바워가 지난 일요일(현지시간 7일) 별세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전했다.

베켄바워가 독일과 세계 축구사에 남긴 업적은 크다. 21세에 출전한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브론즈슈와 신인상을 받았다. 이어 자국 독일에서 열린 1974 월드컵에서 서독의 주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베켄바워는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꺽은 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세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도 1972년과 1976년 2회 수상했다. 수비수로서 발롱도르를 두 번 이상 받은 선수는 베켄바워가 유일하다.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도 4회 수상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으로서 분데스리가 우승 4회, 유러피언컵 3연패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뮌헨의 197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유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독일은 그를 '카이저(황제)'로 불렀다.

선수 말년에는 미국에서 보냈다. 1977년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해 4시즌을 뛰며 우승 트로피를 3번이나 들어 올렸다. 베켄바워는 자신이 몸담았던 팀에서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로 추앙받는다. 팬들과 다수 매체에서 역대 베스트11을 선정할 때 베켄바워가 센터백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역사상 최고 수비수 중 하나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선수 시절 모습.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선수뿐 아니라 감독과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1983년 서독 대표팀 감독에 올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독을 우승으로 이끌며 마리오 자갈루(브라질), 디디에 데샹(프랑스)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한 인물로 남았다. 이후 독일축구협회 부회장,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바이에른 회장 및 명예회장을 역임했다.

베켄바워는 수비수임에도 공격적 롤을 부여받는 '리베로'의 대표적 선수다. 센터백이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까지 해내며 경기 중 전진 드리블을 자주 보여줬다. 후방에서 순식간에 페널티박스까지 전진해 상대 수비를 괴롭히는 모습이 많았다.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수비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영리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가로채기를 자주 선보였다. 또 저돌적인 태클로 상대 공격을 이른 타이밍에 끊어냈다. 패스 능력도 뛰어났다. 수비에서 공격진으로 찔러주는 패스도 훌륭했고. 수비수로서 득점력도 좋았다. 공격에 적극 가담해 중거리골과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더로 꾸준히 득점을 올렸다. 1966 월드컵에서는 동료 공격수 우베 젤러보다 많은 골을 넣으며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켄바워는 평소 한국 축구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국 축구 전설 차범근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했다.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 "독일 대표팀으로 영입하고 싶다"고 말한 인물이 베켄바워다. 또 손흥민이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던 시절 '슈퍼 플레이러'라고 극찬하며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봤다. 김민재는 올 시즌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팀의 전설이자 역대 최고 수비수인 베켄바워를 롤모델로 언급했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차범근과 만나 한국 선수들의 조직력과 체력이 우수하다며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상하기도 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축구인이 전설을 애도하고 있다. 바이에른의 명예 회장이자 전 팀 동료였던 울리 회네스는 "베켄바워는 뮌헨이 품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큰 선물이었다"고 애도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도 성명을 통해 "독일과 세계 축구의 전설 베켄바워는 역사에 남을 업적과 우승을 이루고도 늘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이었다"며 "카이저는 위대한 인물이자 축구의 친구다. 우리의 진정한 전설이다"라고 전했다.

알렉산더 체페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도 "베켄바워가 수비와 미드필더를 오가면 보여준 완벽한 컨트롤 등 진화된 스타일이 현대 축구를 바꿨다. 전설에 작별을 고한다"고 슬퍼했다.

베켄바워와 동시대에 활약한 프랑스 전설 미셸 플라티니는 "베켄바워는 펠레, 요한 크루이프, 보비 찰튼처럼 내가 축구에 발을 딛을 수 있게 해준 동반자다. 그는 독일 축구뿐 아니라 세계 축구를 변화시키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독일 대표팀 후배들도 전설을 향해 애도했다. 뮌헨 공격수 토마스 뮐러는 "뮌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당신이 넘긴 업적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베켄바워의 감독 시절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한 로타어 마테우스는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망 소식은 큰 충격이다. 그의 사망은 독일뿐 아니라 축구계에도 큰 손실이다"라며 "그는 선수와 감독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 사람으로서도 위대했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애도를 전했다. 숄츠 총리는 "카이저(베켄바워)는 여러 시대와 세대를 걸쳐 축구 열정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독일 최고 축구 선수였던 그를 우리가 그리워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란츠 베켄바워(왼쪽)와 요아힘 뢰브. /AFPBBNews=뉴스1
프란츠 베켄바워. /AFPBBNews=뉴스1

박재호 기자 pjhwak@mtstarnews.com

Copyright © 스타뉴스 & starnewskore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