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J팝의 흥망성쇠, K팝의 미래는

홍혜민 2024. 1. 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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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년대 휩쓴 J팝, 2000년대 초까지 아시아 음악 시장 대표주자 맹위
2000년대 K팝 본격 성장세, J팝은 하락세 속 뒤안길로
내수시장 의존·폐쇄성·더딘 변화가 요인...J팝 전철 밟지 않으려면
일본 국민 아이돌 그룹 아라시(왼쪽)와 K팝을 대표하는 그룹 방탄소년단. 쟈니스 사무소, 빅히트 뮤직 제공

과거 J팝이 아시아 음악 시장을 재패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깝게는 2004년 그룹 동방신기가 데뷔했을 때까지만 해도 J팝이 아시아 음악의 중심에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을 정도니,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J팝의 시대였던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아무로 나미에·하마사키 아유미·우타다 히카루·엑스 재팬·SMAP 등 대형 가수들이 최전성기를 이끌었다면 2000년 초에는 쟈니스 사무소 소속 아이돌 그룹이었던 아라시·뉴스·킨키 키즈·칸쟈니8·캇툰 등이 큰 인기를 모으며 J팝 시장을 이끌었다. 일본의 음반산업 규모 역시 이 때를 기점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까지 몸집을 키웠다.

반면 당시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존재감은 미비했다. 주요 기획사들은 잘나가는 J팝 시장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수준이었고, K팝이라는 명칭 역시 J팝을 따라 붙인 생소한 이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K팝과 J팝의 위상은 완전히 뒤바꼈다. 2000년대 초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판세를 키웠던 K팝 시장은 이제 전 세계 음반산업 규모 1위 시장인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구가하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하나의 장르로 입지를 굳혔다. 실제로 현재 K팝이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무대로 일궈내고 있는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방탄소년단을 시작으로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NCT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많은 그룹들이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를 섭렵했고, 압도적인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대규모 월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팬덤이 분포된 만큼 앨범 판매량 역시 과거와는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밀리언셀러는 기본이요, 많게는 500만 장(세븐틴)까지 훌쩍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K팝이 성장 가도를 돌리는 사이, J팝은 꾸준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세계 시장은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존재감이 축소된 J팝 시장은 압도적인 성장을 일궈낸 K팝 시장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빌보드 등 해외 유명 음악 차트에서 J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상당수가 K팝 그룹인 수준이며, 일본 기획사들은 K팝 시스템을 적용해 세계 시장을 겨냥할 만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고 있다. 음악 스타일부터 콘셉트, 퍼포먼스까지 K팝의 성공 공식을 따라가고 있는 지금의 J팝 시장은 과거 K팝 시장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물론 최근 국내에서 J팝을 향한 관심이 다시금 생겨나는 추세이긴 하다. 요아소비 '아이돌', 이마세 '나이트 댄서', 유우리 '베텔게우스'를 비롯해 과거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티팝인 타케우치 마리야의 '플라스틱 러브', 미키 마츠바라의 '스테이 위드 미' 등이 주목을 받으면서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에 비하면 미비한 정도다.

한 때 최전성기를 누렸던 J팝이 지금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내수용 음악'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내수시장 의존, 폐쇄성에 기인한 더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음악 시장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 적극적인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대신 보수적인 태도로 내수 시장에 머무르는 선택을 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내수 시장에 집중하다 보니 음악 역시 글로벌 트렌드보다는 '일본 내 인기' 콘셉트, 장르에 그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또한 다양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의 등장 속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K팝과는 달리 지식재산권 등의 문제로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 역시 J팝이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제 J팝은 K팝 시스템을 적극 벤치마킹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K팝을 떠오르게 하는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해외 시장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만한 그룹을 배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J팝이 지난 2~30여 년 간 벌어진 K팝과의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다시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J팝의 흥망성쇠는 K팝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예다. 현재 K팝 시장은 대형 아이돌 그룹들을 필두로 세계 시장에서 몸집을 불렸지만,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미 해외에서 인기를 모은 그룹들의 전철을 밟으며 존재감을 알리고 팬덤을 모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돌 시장, 소위 '잘 되는 콘셉트'에만 집중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적지 않은 리스크를 가진다. K팝이 잠깐의 전성기를 누리고 쇠락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장르적 다양성을 확대하는 동시에 음악적 성장을 거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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