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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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황제) 별명의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사망했다.
베켄바워의 유족은 8일(현지시각) dpa통신에 "베켄바워 명예회장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13살 때인 1958년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모두 네 차례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려놨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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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황제) 별명의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사망했다. 향년 78.
베켄바워의 유족은 8일(현지시각) dpa통신에 “베켄바워 명예회장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의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13살 때인 1958년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모두 네 차례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려놨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장으로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0년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베켄바워는 3일 세상을 떠난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다.
1994년 바이에른 뮌헨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2006년 월드컵을 독일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도 역임했다. 말년에는 2006년 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독일 축구협회( DFB)의 조사에 이어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2020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했다.
dpa통신은 현역 시절 베켄바워가 우아함과 경쾌함으로 리베로의 역할을 재정의했다고 평가했다. 율리안 나겔스만 현 독일 대표팀 감독은 “베켄바워의 리베로 포지션에 대한 해석이 축구를 변화시켰다. 어쩌면 1960년대 유럽에 퍼져있는 문화적 자유주의와 자유의 정신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며 애도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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