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옷 잘 입고 술 안 마시는 윤석열’…한동훈, 콘텐츠는요?
“아직 내놓은 게 없어서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 소속 한 중진의원에게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사령탑이 된 지 9일로 만 2주가 되지만, 현재까지 눈에 띄는 정책이나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가는 곳마다 인파를 몰고 다니며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를 계기로 지지율이나 관심이 상승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 정치에선 잘 쓰이지 않았던 ‘동료시민’(fellow citizen)이란 용어를 사용하거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같은 유력 인사의 발언을 즐겨 인용하면서 “그동안 잘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옵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을 향한 기대에 비춰보면 콘텐츠나 내실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외화내빈’ 지적도 함께 제기됩니다. 지난 2주간 한 위원장의 공개석상 발언을 살펴봤습니다.
한동훈, 2주간 ‘동료시민’ 45번 언급…‘자유민주주의’ 17번
한 위원장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은 뭐니 뭐니 해도 동료시민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1789년 취임 연설 첫머리에도 쓰였고,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도 연설 시 자주 쓸 정도로 미국 정치계에선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입니다.
한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했던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8일까지 공식석상에서 동료시민을 언급한 건 모두 45차례입니다. “국민의힘 동료 여러분” “동료 의식” 같은 단어까지 포함하면 ‘동료’라는 말은 모두 72차례나 쓰였습니다. 주로 이런 맥락에서 쓰였는데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정말, 그런 세상이 와서 동료시민들이 고통받는 걸 두고 보실 겁니까?(지난달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저는 부채의식이나 죄책감보다 오히려 깊은 고마움과 존경심이야말로 우리가 동료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을 가지는 것을 더 강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고 우리 당은 광주시민들께, 호남의 시민들께 바로 그 깊은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지난 4일 국민의힘 광주시당 신년인사회 연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한겨레에 “동료시민은 수평적인 관계의 동료들이 함께 정치에 참여해서 결정하자는 친근한 말”이라며 “공화주의와 관련된 말로, 국가주의적인 ‘국민’과 차별성이 있는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도 한 위원장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같은 기간 한 위원장이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한 건 모두 17차례입니다. 한 위원장은 수락 연설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국민의힘은 바로 그 자유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는 등 국민의힘 정체성을 강조할 때 썼습니다. 이 밖에도 여당의 정책 집행력을 강조하며 ‘실천’이란 단어를 20차례 사용했고, 자신과 당의 희생을 말하면서 ‘헌신’(11차례), 기존 정치권을 비판할 때 ‘특권’(10차례)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윤석열 사단’ 이미지, 극복할 수 있을까
한 위원장의 이러한 말은 그의 스타성과 결합해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어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한동훈만의 ‘킬러 콘텐츠’는 부족한 것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취임한 지 2주째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메시지가 두루뭉술해 “정확히 뭘 하겠다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한 위원장이 최근 전국을 돌면서 내는 메시지가 대표적입니다. 한 위원장은 수락 연설뿐 아니라 광주·충북·경기·강원에서 “우리가 드리는 약속은 곧 실천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다수당이지만 약속은 약속일 뿐”이라며 실천력을 강조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고 ‘좋은 정책을 제안해달라’고 덧붙이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한 위원장이 당에 대한 새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국민이 원하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답을 제시해야 (호응이) 이어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한 중진 의원도 “한 위원장이 총선에 필요한 정책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다”며 “치고 나가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수직적 관계’ 해소도 현재로선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한 위원장은 수직적 당-대통령실 관계를 재정립하기보다는 “여당과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각자 국민을 위해서 할 일을 하는 기관이다.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라는 얘기가 나올 부분이 아니다”(지난달 27일)라며 그런 지적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도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때보다 한층 더 대통령실과 결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장관 재임 중이었던 지난달 19일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국민이 보시고 느끼시기에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독소조항까지 들어 있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는 지적도 동시에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발언은 ‘독소조항 문제를 해결하면 특검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총선 이후엔 특검법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등 다양한 해석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뒤엔 별다른 단서 없이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지금은 한 위원장이 이재명 대표에 견줘 신선해 보이는 효과는 있지만, ‘윤석열 사단’ 이미지를 극복해야 신선함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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