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뒤 ‘서울행 - 부산팽’ 논란… “총선 100만표 날렸다” 분석도 [허민의 정치카페]
지역의료계 무시·특권의식 보인 정치적 패착… 과거 정치인 테러에 대한 동정심 유발과 대조적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며 ‘기회의 창’ 스스로 닫아… 피습사건 후 민주당 PK 지지율 되레 하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흉기 피습과 이후 행보와 관련해 부산 민심이 요동친다. 부산대병원을 떠나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을 놓고 남쪽으로부터 북상하는 분노, “서울 행(行)=부산 팽(烹)”이라는 탄식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100만 표는 날린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회와 위기의 변주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에 따르면 원래 이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일 단배식과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묘역 참배,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 참배, 양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예방 등 일정을 당일치기로 치르려 했다. 그런데 ‘한 끼 제대로 대접하고 싶다’는 권양숙 여사의 당부로 봉하마을 체류시간을 늘리고 양산마을 방문을 하루 뒤로 미루는 1박 2일 일정으로 계획을 바꿨다. 겸사겸사 부산에서 1박을 하면서 민심을 살피고 2일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 들르면 총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이렇게 일정 조정이 이뤄진 상황에서 2일 오전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이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했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대개는 대중의 동정심과 지지 욕구를 불러 정치활동에 득이 되기 마련이다. 이때 정치인의 태도와 메시지가 중요하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3월 30일 워싱턴DC 힐튼호텔 앞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그는 수술 전에 부인에게 “총알이 날아올 때 몸을 숙여야 한다는 것을 잊었어(I forgot to duck)”라고 농담을 건넸다. 건강 회복 후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는 1901년 9월 6일 버펄로의 박람회 참석 중 무정부주의자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제압당한 범인이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그를 때리지 말라!”고 외쳤다.
2006년 5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31일)을 앞두고 커터칼 습격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술 후 “대전은요”라고 했다는 메시지는 열세였던 대전 선거 판세를 뒤바꿔놓았다. 정치인의 수난은 태도와 메시지에 따라 기회가 된다. 피습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은 이 대표가 수술을 위해 서울대병원행을 결정한 건 외려 기회를 위기로 바꿨다.
◇부산 선거와 민심
부산은 부마항쟁(1979년)으로 대표되는 오랜 민주화의 터전이었다. 군사 권위주의 세력의 장기집권 시절 서울·광주 등과 함께 ‘여촌야도(與村野都)’라는 투표 공식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그 중심엔 김대중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영삼(YS)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인 만 25세에 국회의원이 되고 최다선인 9선 의원을 지낸 YS의 부산에 대한 영향력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1970∼1980년대 그는 ‘야도 부산’을 이끌었고, ‘1987년 체제’ 수립 후 첫 총선인 13대 때(1988년)에서 부산의 15석 가운데 통일민주당이 14석을 싹쓸이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14대(1992년), 15대(1996년), 16대(2000년)에서도 그가 속한 정당이 부산 의석을 사실상 석권했다. 그 사이에는 3당 합당(1990년)과 문민정부 출범(1993년)이라는 정치적 격변도 있었다.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이 다시 당선자를 배출한 건 퇴임한 대통령 YS의 영향력이 줄어든 17대(2004년) 때부터다. 이는 ‘부산 출신’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시기와 맞물린다. ‘박근혜 탄핵’을 전후한 시점엔 민주당 계열이 본격적으로 부산 지역 세 확장을 꾀했다. 20대(2016년)와 21대(2020년) 때 민주당 계열은 5석과 3석을 확보했다. 결국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부산 민심은 지역을 대표하는 시대적 인물의 출몰과 정치 변동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부산 시민의 염원이 담긴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흉기 피습을 당했다는 건, 그 자체로 정치적 변동으로 이어지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부산이 아니라 서울행을 결정함으로써 그 창을 스스로 닫고 말았다.
◇‘서울행’ 파장
정치의 ‘장면’ 변화는 때로 ‘국면’ 변화를 예고한다. 이 대표 측이 부산대병원의 권고를 거절하고 ‘닥치고 서울행’을 결정한 후 ‘닥터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던 장면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서울행은 ‘부산 의사는 실력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국에 내보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불렀다. “잘하는 곳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부산을 ‘열등 지역’으로 만들었다. 서울대병원의 집도의가 “혈관 수술은 고난도여서 경험 많은 의사가 해야 한다”고 한 말은 부산 의료 수준을 경험이 부족한 하급 수준으로 격하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8일 이 대표 헬기 이송에 대해 성명을 내고 “정치인의 선민의식이 국가 응급환자 진료 및 이송체계를 비틀어버렸다”고 밝혔다. 부산시·서울시·광주시의사회 등도 ‘지역 의료계를 무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짓밟았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수도권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아주대병원 의사 출신 A 씨는 “의사회들이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 대표 측의 특권의식에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과 그 외 지역’이라는 차별주의에 대한 우려도 강했다. 부산에서 오래 개업의를 하는 B 씨는 “전국의 권역외상센터 가운데 최정상급으로 평가되는 부산대병원도 못 믿겠다는 건 경악할 일”이라면서 “한국 제2의 도시이자 글로벌 시티인 부산조차 ‘기타 등등’으로 ‘팽’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라고 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부산·울산·경남(PK) 40개 지역 가운데 7개 의석을 얻은 민주당의 올 4월 22대 총선에서의 이 지역 목표 의석수는 10석 이상이다. 이 대표의 부산 방문과 때를 맞춘 피습 사건이 이를 도와주는 듯했지만, ‘서울행=부산팽’이라는 인식이 번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100만 표 날렸다”
리얼미터가 조사한 최근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전국 단위에서의 여야 지지율 흐름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이하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PK에서는 ‘이재명 피습’과 닥터 헬기를 이용한 서울행을 거치면서 민주당 지지도는 크게 떨어졌고,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뒤 지지율이 떨어지던 여당은 ‘이재명 피습’을 계기로 회복한 것이 확인된다. 이 대표는 1일 노무현 묘역에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라고 썼는데, 하루 만에 반칙과 특권을 행사했다. 그의 퇴원 후 첫 메시지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여촌야도’는 과거 농촌은 보수 여당에, 도시는 진보 야당에 투표하는 것. 윤천주가 처음 사용한 말로, 급격한 산업화 시절의 투표 양상을 표현. 지역주의 투표가 고착화하면서 점차 사라짐.
‘닥터 헬기’는 응급의료지원(EMS) 헬리콥터. 응급의료법에 근거해 응급의료 취약지역 환자의 신속한 이송과 응급처치를 위해 운용되는 헬기. 대한민국은 2011년부터 닥터 헬기를 운용.
■ 세줄 요약
기회와 위기의 변주 :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대개는 대중의 동정심과 지지 욕구를 불러 정치활동에 득이 됨. 이때 정치인의 판단과 대응력이 굉장히 중요. 정치인의 적절한 태도나 메시지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어.
부산 선거와 민심 : 부산은 과거 서울·광주 등과 함께 ‘여촌야도’의 공식을 만들어낸 곳. 부산 민심은 시대적 인물의 출몰과 정치 변동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형성. 이재명은 피습으로 그런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었음.
‘서울행’ 파장 : 하지만 피습 후 닥터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간 것은 지역의료계를 무시하고 특권의식을 보였다는 비판 받아. ‘서울행=부산팽’ 논란으로 기회의 창을 스스로 닫으며 “100만 표 날렸다”는 평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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