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헬기 불러달라는 환자 늘어”…의사단체, 이재명 고발
의사들 “안 좋은 선례 남겨…환자 요구 증가”
“의료적 대응이 정쟁으로 비화” 고발 비판도
의사단체가 헬기 특혜 논란이 불거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업무방해 및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의료 현장에선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119응급의료헬기 이송 직후 “서울로 보내 달라” “나도 헬기 불러 달라” 등 환자들의 요구가 늘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평택시의사회는 전날 이 대표와 천준호 비서실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업무방해 및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에서 지난 2일 습격당한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헬기로 전원할 의학적 이유가 없었지만, 이 대표 측이 이송을 고집해 두 병원 업무를 방해했다”며 “국민들 진료와 수술 순서를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앞지른 새치기”라고 비판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부산대병원 의료진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통해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재명 대표 측에 수술을 권유했다”며 “하지만 이 대표 측은 굳이 서울대병원 이송을 고집해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산대병원이 서울대병원 보다 외상센터의 규모나 의료진의 수, 연간 치료 환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이 대표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할 의학적인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통계청에 따르면 1년에 약 12만명의 중증외상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오고 이 중 3만명이 죽는다”며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야당 대표가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한 것은 의료진에 대한 ‘갑질’이고 특혜 요구이며,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대한 업무방해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평소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법제화를 주장해온 것도 지적됐다. 임 회장은 “이 대표는 2021년 12월 대통령 후보 시절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공약으로 발표했다”며 “부산대병원 국가지정외상센터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센터이므로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본인의 말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의사회는 이번 이송이 소방청의 ‘119응급의료헬기 구급활동지침’의 제4조(응급의료헬기 요청기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임 회장은 “사고 당시 부산에는 119응급의료헬기(소방헬기)가 1호기(AW-139)와 2호기(BK-117) 등 총 2대가 있었지만, 이 중 2호기(1997년 도입)는 교체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노후화해 실제 1호기 위주로 운행하고 있었다”면서 “이 대표가 119응급의료헬기를 이용하는 동안 부산지역은 사실상 119응급의료헬기 공백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이송으로 1000만원으로 추정되는 국가 예산이 낭비됐다”며 “환자 진료에 매진해야 할 의료진이 이송을 위해 헬기에 동승한 것 역시 병원과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구급차를 불러 달라”거나 “서울 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환자들의 요구가 늘었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초 이런 문제가 의료 현장에서 종종 발생해 문제로 지적돼왔지만, 이 대표 일을 계기로 폭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앞서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의사 직업을 인증한 한 누리꾼은 “급성 담낭염으로 수술하는 환자가 서울 병원으로 가길 원해서 전원 의뢰서를 써줬다. 그런데 그 환자가 119구급차도 불러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설득하느라 진이 빠졌다”며 “왜 구급차 타고 못 가냐고 우기는데, 이재명이 참 안 좋은 선례를 남겨 한동안 진료실에서 서울 쪽 전원 119구급차로 보내달라는 사람들 설득할 생각 하니 한숨만 나온다. 우리 병원에서 수술 가능한데, 지방이라고 안 한다는 환자 설득하기도 목이 아프다”고 적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응급실에 있는 환자들이 ‘헬기 불러 달라’ 등 이송을 요구했다는 제보가 지난주부터 수십 건 들어왔다. 이전에도 대형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하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강도가 세졌다”며 “지역의료에 대한 선입견을 고치기 위해 의료진들이 몇십년을 노력해왔는데 정치인이 말 한마디로 깨뜨리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일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이 대표 검찰 고발에 대해 비판했다.
신 의원은 “새해 벽두 살해 위협을 받은 대표의 의료적 대응이 정쟁으로 비화 돼 결국 수사기관으로 넘어갈 상황이다. 부산대병원, 서울대병원 모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의료진은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의무뿐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의사결정을 존중할 의무도 있기에 상호 동의를 통한 종합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이상에 대한 쟁점화는 정치적 목적의 비판을 위한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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