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씨를 보내며 만화 ‘마스터 키튼’을 꺼내든 까닭

한겨레 2024. 1.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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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1980~90년대의 일본 만화를 논할 때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깊이와 재미'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이 보기에도 좋은, 수준 높은 만화'라는 평이 나온다.

이에 잘 부합하는 만화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마스터 키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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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나의 아저씨’ 속 한 장면. 티브이엔 제공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흔히 1980~90년대의 일본 만화를 논할 때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깊이와 재미’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이 보기에도 좋은, 수준 높은 만화’라는 평이 나온다. 이에 잘 부합하는 만화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마스터 키튼’이다. 이 작품의 제6권 4, 5회가 다루는 사건이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군(IRA·아이알에이)의 갈등이다. 해당 회차는 아이알에이에 희망을 걸었던 북아일랜드 사람들과 이들을 탄압한 영국을 빗대어 각각 ‘가짜 삼색기’와 ‘위선의 유니온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이알에이의 투사가 대낮에 길에서 살해당한다.영국 언론들은 피아노 교사이자 폭탄 전문가인 여성 ‘제니퍼 오크너’가 10년 복역 뒤 출소하자마자 다시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가 죽은 상황으로 보인다면서 “테러리스트가 사살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신문 ‘선데이선’의 데니스 휴즈 국장은 후배 기자들이 입수한 피범벅 사진을 쓰지 않고 오크너의 가장 아름다웠던 사진을 실으라 주문한 뒤 직접 취재에 나선다. 영국 특수부대(SAS) 출신 보험조사원인 주인공 키튼의 조력을 받아 조사를 이어가던 휴즈는 난항 속에 오코너를 죽인 살인범에게 살해당할 뻔한 위기도 겪지만,결국 오크너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것이 폭탄 기폭제가 아니라 키우던 고양이의 특정 소리에 반응해 작동하는 장치였음을 밝히며 오크너의 결백을 보도한다.

중요한 건 그다음. 특종 이후 오크너의 어머니가 휴즈를 찾아와 평화를 원했던 딸의 유지와 함께 “복수를 그만두고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머니가 이 특종을 휴즈에게만 건넨 까닭, 그건 모든 신문이 처참한 시신 사진을 실었을 때 선데이선만 딸의 예뻤던 모습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키튼 1권 표지. 대원씨아이 제공

오랜만에 이 만화를 꺼내 든 이유는 최근 세상을 떠난 고 이선균씨를 둘러싼 상황이 오크너를 다룬 언론·여론의 행태와 고스란히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저질렀을지 아닐지조차 확인·확정되지 않은 죄상이 마구 흘러나오면 대다수 언론은 이를 검증 없이 흩뿌렸고, 여론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집어먹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으면 될 터이지만 이선균씨에게 쏟아진 건 명백히 법 바깥의 조리돌림이었다.

항변하고 변명할 기회도, 진정 죄가 있다면 그에 맞는 벌을 받을 여지도 사라졌다. 정작그 순간 조명했어야 할 시사적 사안들은 이미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남은 건 ‘이선균이 어쨌든 파렴치해야만 했던’ 자들의 욕망이다. 대중들이 얼마든지 의도대로 움직일 거라 ‘믿는 구석’인 이상, 검은 욕망은 다음에 널브러뜨릴 누군가를 만들어낼 준비가 돼 있다. 우리 언론도 선데이선의 휴즈처럼 그 의도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나, 현실은 “우린 가디언 같은 품격 있는 일류신문이 아니야! 스캔들이야!”라며 휴즈를 닦달하던 선데이선 이사 같은 언론만 득실득실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그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언론사가 가족들이 비공개를 원하던 유서까지 단독 보도라며 흩뿌려놓고 ‘허위’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삭제했다.하지만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랴?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통하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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