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지 않는 거품…느리지만 확실한 추락이 다가온다[공실수렁2]
금리 전환에도 거품 붕괴 않는 이유들
세종시가 나성동·어진동 일대 상가의 소규모 관광 숙박시설 설립을 허용한 건 지난 해 10월이었다. 청사 주변의 숙박시설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목표를 앞세웠지만 속내는 따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빈상가들에 호텔을 들여오면 전국 최고 공실률을 낮추고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종시 상가공실률은 30.2%로 전국 평균 9.4% 보다 월등히 높았다. 10곳 중 3곳의 상가가 비어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은 호텔을 지을 상가를 매입하는 데서부터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한다. 황현목 세종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말했다. “여기 공실로 놀리던 상가주들이 호텔 들어올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니까 인생 역전 될 줄 알고 상가 가격을 분양가 이하로 절대 안 낮추려고 해요. 그동안 임대료도 못받고 손해 본 걸 여기서 만회하겠다는 심리죠. 그럼 호텔이 지어질 리가 있겠어요? 그 가격이면 인구가 더 많은 곳에 가서 호텔을 하지.”
연체 턱 밑까지 버티는 상가주들
세종 집합상가 중엔 평(3.3㎡)당 3000만원이 넘던 분양가가 최근 반토막 수준의 시세로 떨어진 곳이 많다. 지난해 3분기 세종시 집합상가 투자수익률은 0.51%에 그쳐 청사 이전이 마무리된 시점인 2014년(1.23%)보다 더 떨어졌다. 분양가 자체가 거품이었다는 말이 많았다. 거품이 잔뜩 낀 상가 소유주에게 ‘호텔’이란 호재는 그간의 손실을 털어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어디까지나 그 일이 실제 벌어진다면 말이다.
공주 출신 인테리어업자 A씨도 대출 7억원을 끼고 분양받은 어진동 집합상가 세 곳 중 두 곳을 공실로 두고 있다. 그는 입주 이후 한번도 대출 이자만큼의 임대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가게 자리를 구하는 사람도 적었다. A씨는 인테리어 사업을 해서 번 소득을 대출이자 월 400만원을 갚는 데 고스란히 쓰고 있다. 창고로 돌릴 바에 임대료를 크게 낮춰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임대료를 낮추면 상가 가치만 떨어져요. 이미 분양가의 절반 가까이 시세가 떨어졌는데, 여기서 임대료 더 낮추란 말은 그냥 나가 죽으라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공실로 상가 가치를 억지로 붙들어놓는 게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언젠가 호텔로 둔갑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높은 가격에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할 가능성은 더 없다는 걸 A씨도 잘 알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막연하게 버티는 상가주들을 세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실은 수년이 된 문제인데, 경매 물건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어요. 상가주 대부분이 주택을 가졌을 텐데, 최근 몇년간 주택 가격이 많이 오른 걸 가지고, 상가 손실분을 어느 정도 감내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주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물타기 같은 거죠. 주택 시장까지 완전히 망가지면, 그때 상가 물량이 쏟아질 것 같아요.”
거품 3각 동맹, 상가주-은행-감평사
허술한 담보가치 평가로 반복되는 ‘에버그리닝’
자산의 거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가치하락→거래둔화→급매→경공매 순으로 이어지는 버블 붕괴 사이클은 강력한 충격이 없는 이상 작동이 더디다.
통상 주식시장에서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취하는 ‘숏포지션’이 부동산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인 상황에서 일반 차주들은 연체가 턱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부동산을 붙들고 있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수년간 지속된 저금리로 거품이 낀 미국 주택가격은 담보대출과 가계대출 연체율이 4%를 찍는 순간에서 터졌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시중은행의 상업용 부동산담보대출 연체율은 0.2%, 비 은행은 4.4% 수준이다.
은행은 차주들이 거품이 낀 자산을 헐값에 넘기지 않고 버티도록 돕는 조력자다. 부실 담보물의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이 여기서 등장한다. 에버그리닝은 만기 연장이나 추가대출로 부실 채권을 마냥 생기있는 풀처럼 만드는 은행 관행을 말한다. 원칙대로라면 은행은 임대료·금리·기대인플레이션·감가상각·경쟁관계 부동산 등을 종합해서 담보 가치를 매년 재감평하고, 1년 사이 담보 가치가 떨어진 경우엔 대출 이자를 크게 올려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재감평 과정 자체가 매우 느슨하게 작동한다. A씨의 상가도 지난 7년간 공실이었지만 대출 금리가 체감상 부담이 될 정도로 오른 건 고금리가 본격화한 지난해 초부터다. 서울 영업지점에서 기업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한 은행원은 “적어도 부동산 시장이 뜨거웠던 최근 2~3년 동안 재감평으로 상환 독촉을 하거나, 재감평을 통해 대출이자를 높인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감정평가 법인도 거품을 유지하는 카르텔에 협조한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재감평 할 때 기존 평가액보다 낮게 가치를 산정하면 은행이 평가법인에 책임을 묻거나 향후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평가사들이 종종 호소한다. 재감평이 은행 세칙에 규정된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더구나 집합상가 등 비주거용 부동산은 정부가 내놓는 공시가격이 없다. 대조할만한 가격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의 인위적인 담보물 평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은행은 ‘에버그리닝’을 통해 이자 장사를 한동안은 유지할 수 있고 외관상 건전한 대차대조표를 갖출 수 있다. 하지만 왜곡된 장부 가액의 뒷면에는 부실 담보물 위험이 곧 터질 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019년 ‘부동산금융의 시대’ 보고서에서 “금융기관이 보유한 실물자산 익스포저는 극심한 변동성 위험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총선 D-day, 거품을 사수하라!
정부 역시 거품을 빼기보다 유지하는 정책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최근에는 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부실 채권을 정리하려고 해도 이를 정부가 가로막는 일도 있었다.
최근 브릿지론 만기가 올 5월까지 연장된 ‘르피에드 청담’ 럭셔리 오피스텔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1순위 대주인 새마을금고는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지난해 줄곧 반대했는데, 돌연 금융위원회 주재로 열린 ‘부동산PF 사업 정상화 추진상황 점검 회의’에 참석한 뒤 입장을 선회했다. 총선을 의식한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기정사실처럼 돌았다.
이 사업은 시행사가 총 4640억원 규모 브리지론을 받아 강남 노른자 땅 프리마호텔 부지를 평당 3억원에 사들이면서 닻을 올렸다. 주거 시설 분양가만 100억원대, 최고층 펜트하우스는 최대 300억원에 팔 계획이었다. 거품이 잔뜩 낀 토지를 사들인 만큼, 사업성을 맞추려 초고가 분양에 매달린 것이다. 브릿지론 전체 대출의 40%를 투입한 새마을금고가 만기연장을 끝내 거부했다면 땅을 재매각하거나 경공매로 넘겨 부지 가격의 거품이 조정되는 단계를 거쳤을 것이다.
물론 만기 연장은 후순위 채권자인 증권사·캐피털사·저축은행 등의 ‘도미노 부도’를 막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시장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는 일시적이다. 거액의 부실 채권 정리가 지연될수록, 향후 사업성이 높은 투자 기회가 와도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늘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콜금리가 아무리 인하되어도 유동성이 늘지 않는 일은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정부는 주택 시장에선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수요 진작책을 총동원 중이다. 2022년 긴급생계용 주담대 규모 확대,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80% 허용,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면제한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상품이 쏟아졌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초 수도권 집값이 일시적으로 올라간 것은 주택시장 경착륙을 우려해 실시한 PF대출 연장, 특례보금자리론 등 각종 정부정책의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도 동일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신생아 특례대출, 세컨드 홈 활성화 정책, 위기 PF사업장 85조원 유동성 공급 등이 그것이다.
버블 붕괴 고지에서 다시 금리인하?
“가계부채가 인질됐다”
정부가 거품을 유지하는 정책을 총동원하더라도 무차별적 통화정책의 폭발력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2022년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상업용 건물은 지난해 1~11월 거래량이 4만8281건으로 2021년 대비 약 5만건이 줄었고 3분기 전국 상가 매매가격은 3.3㎡당 3391만원으로 전년 같은 시기 (4974만원)보다 크게 떨어졌다. 버블이 빠지는 징조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세종의 한 상가에서도 최근 급매 상가들이 쏟아졌다. 한 신탁회사는 수년간 공실로 뒀던 1층의 수십개 상가 점포들을 지난해 여름 분양가보다 50% 낮은 가격에 내놨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고금리를 못 버티고 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매물 광고문에는 ‘매매 후 임대차까지 연결해드린다’ ‘공실 불안을 덜어드린다’ ‘인테리어 파격 지원’ 등등의 혜택이 붙었다. 이래도 팔리지 않으면, 다음 수순은 경공매다. 시장이 원하는 수준의 가격까지 거품이 완전히 빠지게 되는 사이클이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올해 한국은행이 다시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이미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고채 금리는 연내 2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한 수준까지 내려간 상태다. 한국은행법 1조에 규정된 통화신용정책 목표는 물가안정뿐 아니라 ‘금융 안정’도 있다. 자산가격 붕괴가 가계부채 뇌관을 터뜨려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연착륙을 위한 통화 당국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대부분 저축이 아닌 빚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했기 때문에 은행과 가계가 기준금리 인질로 잡혀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블을 저금리로 다시 유지시키는 이러한 방향에는 대가가 따른다. 일본은 그 시기를 겪었다. 1991년 기준금리 6%로 자산가격이 추락하자, 6개월만에 4.5%로 내리고 1993년 2.5%, 1995년 1%까지 낮췄다. 당시 일본 부동산 자산 대부분은 기업 소유였는데 자산 가격이 빠지는 것과 저금리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좀비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별 기업의 부실채권은 계속 만기가 연장됐고, 시장에는 경쟁력 없는 기업들과 부실 채권들이 나돌았다. 일본 30년 침체는 그렇게 시작했다.
부동산금융 전문가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연구위원은 한국이 곧 그 모습을 닮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망한다는 건 단순히 부동산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 상태, 디폴트가 되어야 망하는 거에요. 그래야 경공매 물량이 쏟아지고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거품이 빠지죠. 지금은 가격이 떨어진다는 심리적 충격은 있지만 시장 영향은 없잖아요. 금융기관이 계속 빚을 내주고 있고 정부도 ‘아무도 망하지마’라며 금리를 조정하고 각종 정책을 풀잖아요. 이로써 장부상 자산 가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경기는 침체되겠죠. 모든 경제주체들이 부실채권에 끌려다니고, 투자할 사람은 시장에서 사라지니까. 수 많은 공실에, 경제 활기는 계속 떨어지며 서서이 말라 죽어가는 것. 한국은 장기 침체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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