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건설이 뜬다] ②“여기 와서 똑똑해졌어요” 가평 청심빌리지에서 만난 입주민들
2005년 문 열어 현재 170여명 입주
입주민 만족도 ‘95점’… 환경·액티비티 강점
파크골프장 갖춰… 해외투어에 대회까지
노인 1000만시대.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등장하면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주거 환경 변화도 예상된다. 실버타운이 대표적이다. 총 6회에 걸쳐 실버타운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중략)”
지난 4일 가평 청심빌리지에서 만난 이미자(83세·여)씨. 그는 앉은 자리에서 시 한 편을 멋 드러지게 낭송했다. 그가 15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 곳에 온 건 1년 4개월 전이다. 지인의 소개로 들어왔다는 이씨는 이 곳에서 시 낭송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나이 들면서 기력이 쇠해졌지만 이 곳에 와서 헬스장을 수시로 찾고,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건강도 회복했다. “평범한 할머니였는데 여기 와서 재능을 찾았어요. 시 낭송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답니다.”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차로 1시간 20분을 달려 도착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의 청심빌리지. 이 곳은 산과 청평호수에 둘러싸인 전원형 실버타운이다. 청심빌리지에서 만난 노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았다. 일상의 만족도를 묻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자연이 좋아서’, ‘파크골프가 취미여서’, ‘걷는 것을 좋아해서’. 수 많은 실버타운 중 이 곳을 택한 배경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도심과 적당히 떨어진 ‘전원형 실버타운’이어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북적북적한 도심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쐐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고 했다.
2005년 문을 연 청심빌리지에는 170여명이 입주해 있다. 평균 연령은 81세로, 다른 실버타운(85~86세)에 비해 젊은 편이다. ‘전원형’이어서 더 연령대가 높을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랐다. 60대도 23명이 입주해 있다. 해외교포 출신들이 많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다. 청심빌리지 자체 유튜브 채널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어서다. 국내 실버타운을 선택할 때 베이스캠프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현재 이 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1년 가량 대기해야 한다. 84㎡(34평) 형 기준 보증금 2억원에, 월 생활비가 334만원(2인 기준) 가량 든다.
차상협 청심빌리지 원장은 “여러 액티비티(activity)가 장점인 만큼 생각보다 젊은 연령대가 많다”면서 “자체 설문조사에서 만족도는 95점에 달했다”고 했다.
청심빌리지에는 다른 실버타운에서는 볼 수 없는 파크골프장이 있다. 파크골프는 최근 고령층에서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연면적이 1만3150㎡(3978평)에 달하는 넓은 부지 가운데 본관 앞쪽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이날 영하의 날씨였음에도 3~4명이 파크골프를 치고 있었다. 파크골프를 즐기는 입주민들끼리는 대회도 열고, 해외투어도 다니고 있다. 입주자들 중에서는 파크골프가 결정적인 입주 배경인 경우도 있었다.
퇴직 공무원인 신현만(75·남)씨는 “수 십 년간 일반 골프를 좀 쳤는데 몸이 좀 안좋아지고 나서는 파크골프를 치기 시작했다”면서 “부부가 같이 하는 스포츠를 이곳에서는 틈만 나면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이외에도 실외에서 즐길거리가 다양했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토산책길과 청평호수 둘레길, 텃밭 꾸미기, 정원 등이 조성돼 있어서 봄~가을에는 입주자들이 수시로 이용하고 있다. 청평호수에서는 전기 유람선도 운행된다. 실내에도 찜질방과 건강테라피실, 사우나, 헬스, 당구, 탁구장 등이 마련돼 있다. 아침 명상과 라인댄스, 요가, 힐링체조, 서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건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영애(73·여)씨는 “집에서는 주로 누워있었다. 외출이라곤 복지관 가는 게 전부였다”면서 “여기와서는 환경이 좋아 매일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쓰면서 시 쓰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일마다 프로그램이 다른데 거의 매일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매월 90식씩 제공되는 식사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혈당지수가 낮아질 수 있는 재료를 중심으로 영양식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해독주스가 별도로 제공된다.
오랜 교직생활 끝에 은퇴한 박승춘(72·남)씨는 “수 십 년 밥을 해준 아내에게도 퇴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다만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챙기기 위해선 끼니를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데 부부가 여기 들어와 매 끼니 영양식을 먹고 있다”고 했다.
청심빌리지 입주민들이 무엇보다 장점으로 꼽은 것은 전원생활 덕분에 얻은 ‘삶의 여유’였다. 복잡한 도심에서 멀어진 만큼 일상에서 올 수 있는 스트레스와도 거리를 두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입주민들은 신앙활동에 몰두하기도 했다. 청심빌리지는 통일교 측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청심복지재단의 기부를 받아 만들어졌지만 실생활에서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없다고 했다.
양영자(80·여)씨는 “자녀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 자녀를 독립시키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나니 건강이 악화되면서 이석증이 왔다”면서 “공기 좋은 곳에서 별다른 고민없이 지내니 스트레스가 사라졌고 건강도 되찾았다”고 했다.
박씨는 “퇴직 후 집에 있을 때도 가질 수 없었던 생활의 여유가 생겼다”면서 “서예를 하며 마음도 차분해지고 종교활동도 열심히 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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