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2024. 1. 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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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전인권(69)은 어렸을 적 서울 삼청공원 뒷산에서 열매와 과실 등을 자주 따먹었다고 한다. 1950~60년대 한국은 정말 지독하게 가난했다. 감자·고구마로도 한끼를 때우지 못해 메뚜기·개구리도 잡아먹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땐 시집·장가 다 가고 아이를 5~10명씩 낳았다. 세계 최빈국에 속했지만 자살은커녕, 악착같이 살았다.

예로부터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이었다. 가족, 친척은 물론 이웃끼리 좋은 일, 굳은 일 함께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사진은 1988년 서울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 /tvN 제공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안에 드는 부자나라다. 전세계인들이 한국 문화와 음식을 즐기려고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자살률은 최고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중 2003년부터 단 한차례 제외하고 줄곧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처음 자살률 1위를 기록한 2003년은 1997년 ‘IMF’ 상황여파로 이해할만했다. 그런데 이후 20년간 1위를 고수한 점을 보면 특정 대통령이나 정치세력의 탓으로 볼 수 없다.

혹자는 군부독재정권이나 수구보수세력이 만든 나쁜 사회구조,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후유증이라고도 주장하지만 1987년 민주화가 된지 이미 37년이 흘러갔다. 정권교체도 계속 이뤄졌고 수많은 개혁조치가 이뤄졌다.

자본가를 비롯 가진 자들 탓, 빈부격차가 가장 큰 요인이란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면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기계적 평등화를 시키면 자살자는 줄고 희망찬 사회로 가는 것일까. 바로 북한 사회가 극명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 과거 한국 사회는 가난했지만 정(情)이 많은 사회였다. 십시일반 먹어도 같이 먹고 굶어도 같이 굶었다. 집안의 한사람을 위해 나머지 가족이 희생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집안 어른, 이웃, 학교 선생님 등이 있는 공동체 사회였다. 자율이든 타율이든 서로 의지했고,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도 씨줄 날줄처럼 얽혀 함께 헤쳐 나갔다. 어려운 일 닥치면 끝까지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도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지금은 풍요롭지만 정이 없는 사회가 됐다. 공동체는 허물어져가며 각자 도생, 개인주의 사회가 됐다. 잘되면 자기 탓이요, 안되면 남의 탓이다. 이웃과는 담 쌓고 반려견에게 위안을 얻는다. 집안, 학교, 직장에도 어른이 없다.

대신 똑똑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스마트한 개인은 남의 간섭이나 통제를 덜 받는 대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돈에 의존하고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막상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에게 하소연할 데도 없이 맥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니 단군 이래 가장 태평성대한 상황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온갖 논리와 이유를 가지고 과거 시대를 비판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또한 ‘나’와 반대되는 세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와 비난을 퍼붓는 일이 일반화됐다.

명백한 자신의 잘못도 남 탓으로 돌리고, 있지도 않은 범죄를 남에게 씌우기도 한다. 이를 계도할 사회 지도자나 세력들이 오히려 앞장서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허물어뜨린다. 역사와 나라를 부정하고 가정이나 학교, 직장을 ‘전근대적’이라고 몰아세운다.

세상 만물은 음양(陰陽)이 있고 명암(明暗)이 공존하지만 오로지 어둡고 음습한 면만 강조한다. 그런 세월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사람들은 일종의 아노미(anomy・가치혼란) 속에서 피폐해지고 자살을 부추긴다.

어머니들끼리 모여 고구마 등을 까먹으며 수다 떨면서 흉도 보고 고민도 함께 나누는 모습은 과거 대표적인 한국적 풍경이었다. 사진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tvN 제공

#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21세기 AI시대에 개인주의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개인은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 개인이어야 한다. 그런 개인은 물질적 다과(多寡)에 상관없이 마음이 풍족한 사람이다.

먼저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향해보자. 남 탓이나 손가락질을 그만하고 내 내면을 바라보자. 과연 얼마나 깨끗하고 정의로운가?

마음을 단련하는 것은 물리적 세계의 그것과 다르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경쟁에서 이긴다고, 제3자가 도와준다고 성취되지 않는다. 마음의 지혜(깨달음)도 남의 것을 베끼거나 빼앗거나 훔쳐서 얻을 수 없다. 오로지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기존의 암기, 분석, 추리 등 인지능력 교육이 아니라 비판단·집중·알아차림·감성·직관·통찰·영적 영역의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아내와 가족을 잃고 자신은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1905~1997)은 평소 우울증 환자들에게 “지금 겪는 어려운 상황을 당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좋은 도구로 생각하라”고 격려하면서 니체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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