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화재 아빠에 심장 덜컹” 침대업체 대표가 내린 결단

이미지 기자 2024. 1. 9. 03: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 “불 안타는 침대 특허 풀겠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저도 두 아이의 아빠니까요.”

국내 2위 침대 업체인 시몬스의 안정호(52) 대표가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難燃) 매트리스의 제조 공법 특허를 8일 전면 공개하겠다며 밝힌 이유다. 이날 시몬스는 자사가 보유한 난연 매트리스 제조 공법 관련 특허(등록번호: 10-2151273, 10-2151274)를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원하는 업체는 누구나 이 특허를 활용해 특허 사용료 한 푼 내지 않고 난연 매트리스 침대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몬스 안 대표가 어렵게 따낸 특허를 공개하기로 한 계기는 지난달 성탄절에 전해진 서울 도봉구 화재 사고 소식이었다고 한다. 성탄절 새벽녘 서울 도봉구 방학동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불로 2명이 숨지고 29명이 다친 사고를 TV 뉴스로 봤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선 이 사고로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뛰어내린 30대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연도 읽었다. 안 대표는 “심장이 덜컹했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대학생인 딸과 아직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늦둥이 아들을 둔 아버지다. 안 대표는 “이런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종일 생각했다”고 했다.

“돈을 기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더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화재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거나 줄일 수 있는 유익한 기술 개발에 지원할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회사가 가진 난연 매트리스 관련 특허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난 거죠.”

그는 난연 매트리스 특허 개발에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다.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 제조 특허는 2016년부터 2년 동안 직원 7명이 매트리스 150개를 불태워가며 개발했다. 개발비만 10억원이 넘게 들었다. 특허는 2020년에 받았다. 연구 개발비 부담이 만만찮은 만큼 국내에서 난연 매트리스를 직접 만드는 업체는 시몬스 외엔 매트리스를 수출하는 글로벌 매트리스·가구 기업 지누스 정도만 꼽힐 정도로 드물다.

방재시험연구원이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와 일반 매트리스에 불을 붙여 화재 안전성을 시험하는 모습. 난연 매트리스(위)는 불이 더 번지지 않고 꺼졌지만, 일반 매트리스는 약 5분 후 불이 더 크게 번졌다. /시몬스

침대 매트리스는 주거 공간 등에서 불이 일어날 때 피해를 키우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불이 한번 붙으면 불쏘시개로 돌변해, 실내 전체를 폭발적 화염에 휩싸이게 하는 이른바 ‘플래시 오버(Flash over)’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유독 가스도 내뿜는다.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에선 특히 한번 플래시 오버가 발생하면 화염과 함께 유독 가스가 계단으로 빠르게 번져 주민들이 대피하거나 화재를 진압하는 데 엄청난 장애가 된다. 난연 매트리스 보급이 절실한 이유다.

시몬스의 난연 매트리스는 버너로 불을 붙이면 일부분이 불에 타기는 하지만 번지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심지어 일부는 번지지 않고 꺼지기도 한다. 시몬스는 자체 개발 기술로 국내 인증은 물론, 국제 표준 인증 시험까지 통과했다.

국내에서 난연 매트리스 보급이 미흡한 것은 관련 법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미국·캐나다·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난연 매트리스만 판매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시몬스 안 대표는 “난연 매트리스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난연 원사나 패드가 들어가니 일반 매트리스보다 2~5%가량 제조비가 더 들겠지만, 안전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특허 공개로 시몬스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사실 잠깐 들긴 했다”고 웃었다. 이어 “그래도 이번 특허 공개로 화재 사고 때 안타까운 사연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성탄절에 들려온 30대 아버지의 숭고한 부정(父情)이 우리 사회에 ‘선한 바이러스’로 확산하는 순간이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