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보좌진 9명 몽땅 지역구 투입”… 세금으로 선거운동 논란

김은지 기자 2024. 1. 9. 03: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회 비우고 ‘표밭’ 동원된 의원 보좌진
“세비 받는 공무원 선거투입 부적절”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12월 임시국회 종료 다음 날인 10일부터 의원실 소속 국회 보좌진 9명 전원을 자신의 지역구에 보내기로 했다. 국회에서 입법활동을 해 온 서울 보좌진 인력 전원을 4·10총선 경선 대비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아예 국정감사 전인 지난해 9월부터 국회 보좌진 7명을 지역구로 보냈다. 이들은 지역에서 이 의원의 선거 전략 수립부터 지역 민원인 면담 업무까지 이어가고 있으며, 향후 선거유세 등도 벌이게 된다.

총선을 90여 일 남기고 여야 현역 국회의원들이 입법 보좌역인 국회 보좌진을 자신의 지역구 선거운동에 대거 동원하고 있다.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9일부터 현역 의원 보좌진 대부분이 국회를 비운 채 지역 현장으로 파견되는 것이다.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 관리도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지역에 보좌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문화”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비로 월급을 받는 별정직 공무원 신분인 보좌진을 의원 개인의 선거운동에 동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장을 지낸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보좌진이 없는 정치 신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표밭’ 동원된 보좌진
민원인에 커피 타주고 전단지 돌려… 입법 수당 받으며 국회 업무 뒷전
美선 의회-선거캠프 엄격히 분리… 전문가 “지역구 담당 따로 선발을”

더불어민주당 호남 지역구의 한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보좌진 9명 중 8명을 호남 지역구 사무실로 출근시키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남아 국회 관련 업무를 맡는 건 1명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텃밭인 호남 지역은 경선이 곧 본선인 경우가 많다”며 “경선이 임박한 만큼 인력을 대거 투입해 일찍이 지역구 다지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의원실뿐 아니라 여야 할 것 없이 선거철만 되면 국회가 텅텅 비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는 “대통령실발(發) 인사와의 경선이 예상되는 TK(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해당 보좌진은 일찌감치 짐을 싸서 지역구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 입법 전문인력을 지역 선거운동에 동원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 사무처로부터 보수를 받는다. 이 중에서도 의원실마다 2명씩 배정돼 있는 보좌관(4급 상당), 선임비서관(5급 상당)은 고급 인력으로 대우받아 보수가 상당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보좌관의 연간 보수는 8759만 원, 선임비서관은 7884만 원 등이었다.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은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업무 범위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선거에 동원된 보좌진은 각종 본업과 관계없는 잡무를 도맡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소속 한 보좌진은 “사무실에 민원인들이 오면 커피를 타주거나, 지역구를 돌면서 전단 돌리듯 의정 활동 보고서를 나눠주기도 한다”며 “보좌진은 채용과 면직에 관한 모든 권한이 의원에게 있기 때문에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보좌진은 “교통비, 월세 등을 지원받지 못하고 사비를 털어가며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에 비치되는 컴퓨터, 노트북 등 국회 사무처 물품을 지역구 사무실로 빼돌려 사용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했다.

● 美 의회 업무-선거 지원 엄격히 구분

현역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활동 또한 의정 활동의 일부”라는 입장이다. 한 지역구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 이해를 바탕으로 ‘보텀업(상향식)’ 방식의 입법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며 “보좌진이 지역구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거철마다 벌어지는 ‘국회 공백’을 막고 입법 정책 역량을 보장하기 위해 보좌진의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 업무를 담당하는 보좌진을 따로 선발해 정책역과 역할을 나누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의회 업무와 선거캠프 지원 업무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는 2012년 하원의원 로라 리처드슨에게 의회 사무실 직원을 선거 캠프에서 일하도록 종용한 혐의로 1만 달러(당시 기준 약 1131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선거 유세는 의회 공식 업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의회 보좌진을 동원하는 것은 연방법, 의회 법규 등 위반이라는 취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 보좌진의 지역 활동이 결국 정책과 공약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어서 별도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보좌진이 있는 현역 의원들이 원외 인사 등 정치 신인들에 비해 선거에 더 유리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