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3] 우유를 따르는 여인
볕이 잘 드는 창 앞에 서서 여인이 우유를 따른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흰 우유가 어찌나 진하고 부드러워 뵈는지 풍부한 그 맛이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거친 도기 그릇, 손잡이가 반들반들 길이 든 바구니와 파삭한 빵에서부터 묵직한 청색 앞치마, 힘주어 주전자를 받쳐 든 여인의 흰 팔뚝, 몸에 꼭 맞게 바느질한 노란 상의,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 두건, 군데군데 못 자국이 난 오래된 회벽까지, 시선을 위로 천천히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시공간을 이동해 17세기 네덜란드의 소박한 부엌에 와있다. 4절 도화지보다 작은 화면에서 정갈한 그날의 햇빛과 조용한 공기가 퍼져 나와 전시실을 채운다. 명징한 색과 질감은 2억 화소 카메라로도 찍히지 않는다.
지난해 이 그림을 직접 보는 안복(眼福)을 누린 이들이 113국의 65만명이다. 16주간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1632~1675) 특별전은 개막 전 예매표 20만 장이 완판됐고, 남은 표 45만 장도 개막 이틀 만에 매진됐다.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지만 작품 수가 고작 37점인 데, 그중 처음으로 28점을 한자리에 모은 사상 최대의 전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에서는 표를 더 찍을 수 있었겠지만 입장객 수를 가능한 한 제한해서, 이토록 작고 고요한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미술사에서 페르메이르의 의미는 비유하자면 우렁찬 목소리의 웅변가들이 광장에 모여 저마다의 영웅 서사를 목 놓아 외칠 때, 보통의 삶 속 소박한 순간을 정제된 언어에 담아 낮게 속삭이는 시인 같은 화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는 절제의 힘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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