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태국 사람들이 화난 이유

박웅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태국비즈니스센터장 2024. 1. 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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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초 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X(옛 트위터)에는 ‘#แบนเที่ยวเกาหลี(한국 여행 금지)’ 해시태그 게시물이 100만건 넘게 올라온 적이 있다. 반한(反韓) 감정에서 “나는 이제 K팝 팬이 아니다”라며 ‘한국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월드 스타 리사(블랙핑크)를 배출한 태국은 세계 제1의 한류 팬덤 국가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태국인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한국을 찾은 태국 관광객들이 입국도 하지 못한 채 태국으로 되돌아온 사례가 몇 년 새 늘면서 생긴 반감이 쌓이고 쌓여 터진 문제였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보면, 태국인은 그동안 각종 한국 드라마를 통해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작년 9월 한국의 한 방송사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등장했다. “네 엄마가 너 낳고 미역국은 드셨냐? 너 같은 사이코를 낳고 도대체 뭘 드셨냐? 똠얌꿍? 아니면 선짓국?” 태국인들은 자신들의 상징적인 음식 ‘똠얌꿍’을 비하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적지 않다. 올해 방콕을 찾은 한 한국인 유튜버는 길거리에서 태국 여성을 성희롱하는 장면을 내보냈다가 귀국 후 구속됐다. 태국뿐 아니라 작년 베트남에서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가 ‘월남전 왜곡’을 이유로 현지 당국에 의해 갑자기 퇴출되기도 했다.

유독 동남아 국가에서 이런 사례가 빈발하는 건 상대국에 대한 ‘문화적 감수성’ 부족 때문이다. 문화는 우(愚)와 열(劣)의 개념을 적용하는 순간, 어느새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려는 ‘문화 제국주의’의 폭력적 속성을 띠게 된다. 글로벌 콘텐츠 강국이 된 한국도 그런 위치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선 ‘문화적 상대주의 혹은 다원주의’의 균형감 있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올해 한국과 태국의 수교 기간이 65주년을 맞았다. 한 사람의 평생에 해당할 만큼 긴 시간이다. 양국이 이 긴 우정을 발판 삼아 ‘문화적 동반자’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한국인들에게 김치가 문화적 자존심의 영역이듯 태국인들에겐 똠얌꿍이 그렇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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