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축구 '카이저' 베켄바우어 별세...선수, 감독, 임원으로서 독일 축구에 지대한 영향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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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선수이자 감독으로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계속해서 "베켄바우어는 1980년 독일로 돌아와 함부르크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트로피를 획득했고, 코스모스에서 또 다른 짧은 기간을 보낸 후 1983년 38세 생일 다음 날 프로 축구에서 은퇴했다. 이듬해 베켄바우어는 독일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베켄바우어는 이듬해 마르세유 감독으로 프랑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0년 뒤 바이에른에서 두 차례 재임하며 두 개의 트로피를 더 추가했다. 그는 바이에른 회장을 역임하고 2009년에 자리를 떠났고, 임원으로서 독일이 2006년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하도록 도왔으며 헬리콥터를 타고 전국을 횡단하며 64경기 중 46경기를 관전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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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신사 DPA는 가족들이 성명을 통해 베켄바우어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유족은 "내 남편이자 아버지인 베켄바우어가 어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든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발표하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ESPN은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우어는 선수, 감독, 임원으로서 독일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이에른 뮌헨과 그의 조국에서 뛰는 그의 우아함과 리더십은 그에게 '황제'라는 뜻의 'Der Kaiser'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며 "펠레는 그를 '내가 본 선수 중 최고 중 하나'라고 불렀다. 그는 1972년과 1976년에 발롱도르 상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독일의 세기의 축구 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2004년에 FIFA 100주년 선수상과 축구인격상을 받았다. 1974년 독일 대표팀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ESPN은 이어 "베켄바우어는 수비라인 뒤에서 경기의 속도를 결정하는 자유로운 선수인 리베로의 역할을 정의했다. 1965년 9월부터 1977년 2월까지 독일 국가대표로 103경기에 출전한 그는 독일의 '황금 세대'를 이끌었고 1974년 월드컵에서는 홈에서 우승했다. 독일 클럽 차원에서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에서 유럽 컵 3회, 유럽 컵 위너스 컵 1회,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독일 컵 4회 우승을 차지했다. 바이에른에서 뛰었던 베켄바우어는 1977년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했고, 미국으로 이적하면서 그의 국가대표 경력이 끝났다. 그는 미국에서 뛰는 동안 펠레와 함께 NASL 트로피 3개를 획득했다"고 했다.
계속해서 "베켄바우어는 1980년 독일로 돌아와 함부르크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트로피를 획득했고, 코스모스에서 또 다른 짧은 기간을 보낸 후 1983년 38세 생일 다음 날 프로 축구에서 은퇴했다. 이듬해 베켄바우어는 독일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베켄바우어는 이듬해 마르세유 감독으로 프랑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0년 뒤 바이에른에서 두 차례 재임하며 두 개의 트로피를 더 추가했다. 그는 바이에른 회장을 역임하고 2009년에 자리를 떠났고, 임원으로서 독일이 2006년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하도록 도왔으며 헬리콥터를 타고 전국을 횡단하며 64경기 중 46경기를 관전했다"고 전했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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