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재영]대통령 한마디에 정책 뒤엎는 게 ‘증시 저평가’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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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국립현충원 참배 등 통상 일정을 제외한 사실상 첫 대외 일정으로 2일 증권시장 개장식을 택했다.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자본시장의 한 해 시작을 함께하며 증시 활성화의 의지를 밝혔다.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던 금융당국이 몇 달 사이에 갑자기 과도한 배당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장관이 약속해도 믿을 수 없고, 언제든 대통령 한마디면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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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 정책 믿고 누가 투자하랴
금투세는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 5000만 원을 넘으면 수익의 20∼25%를 세금으로 걷는 제도다. 2020년 여야 합의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당초 지난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주식시장 침체 등을 이유로 내년으로 시행을 미룬 상황이었다. 정부가 6개월 전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도 2025년 1월로 시행 시기가 명시돼 있었다.
윤 대통령은 금투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들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가치의 외국 기업보다 저평가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한국 증시를 낮추보는 주체는 외국인일 텐데, 사실 금투세는 외국인에겐 해당 없는 세금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도 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걷고 있으니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유로 내세울 수도 없다. 예고편으론 설명이 부족했다. 본편 격인 ‘경제정책방향’의 해설을 들어봐야겠다.
하지만 ‘활력 있는 민생경제’를 주제로 4일 정부가 내놓은 68페이지짜리 경제정책방향 어디에도 금투세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강조하고, 조 단위 세금이 걸린 정책이 빠진 건 이해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의 사전 브리핑에 힌트가 있다. “대통령 행보나 메시지와 관련된 정책의 경우 특수성을 감안해 다룰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인하해 오던 증권거래세는 다시 환원하는 것인지 등 정책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이제부터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대통령 발언이나 대통령실 의중에 따라 금융정책이 바뀐 건 처음이 아니다. 상장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완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 12일 추경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야당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불과 9일 뒤인 같은 달 21일 공식 발표됐다.
그사이 인사로 물러난 추 전 부총리는 일구이언을 피했지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실없는 사람이 됐다.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은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공매도를 통제하는 전산시스템 구축 요구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인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공매도 전면 금지를 직접 발표해야 했다. 4일 윤 대통령은 전산시스템이 확실히 구축될 때까지 계속 공매도를 막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새 김 위원장에겐 자신감이 생겼는지 궁금하다.
올해 초에는 정부의 오락가락 배당정책 때문에 투자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해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던 금융당국이 몇 달 사이에 갑자기 과도한 배당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사이에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돈잔치’ 발언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기업의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 복잡한 지배구조 등을 많이 거론한다. 한국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일관성 없는 정책을 드는 외신 보도도 있다. 장관이 약속해도 믿을 수 없고, 언제든 대통령 한마디면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겠나. 이쯤이면 대통령과 정부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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