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길’ 걷는 독립 영웅의 딸
상처뿐인 승리…군부에 암살된 아버지 명성 ‘먹칠’
방글라데시 총선에서 집권 여당 아와미연맹(AL)이 압승하며 셰이크 하시나 총리(사진)의 4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선거 전부터 방글라데시 당국의 극심한 야권 탄압과 언론 장악이 횡행했고, 제1야당이 보이콧을 선언한 가운데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방글라데시 국부의 딸로 존경을 받아온 하시나 총리의 ‘독재 본색’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현지 매체 다카트리뷴 등은 8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날 열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AL이 지역구 299석 중 223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친정부 성향 무소속 후보가 61명 당선됐고, AL과 협력 관계인 자티야당도 11석을 차지했다.
이번 선거는 시작 전부터 부정 의혹으로 얼룩졌다. 우선 방글라데시 당국은 지난해 10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 고위 인사와 총선 출마 예정자, 일반 당원 등 2만명을 체포했다. BNP는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하시나 총리 사퇴와 중립 정부 구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총선 보이콧을 선언한 후 대규모 투표 거부 운동을 전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하시나 총리와 AL은 BNP 보이콧을 폄훼하면서 여전히 많은 소규모 정당들이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그러나 총선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커졌고, 하시나 총리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당 지도부에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나온 대책이 AL의 공천을 받지 못한 자당 소속 인사들을 무소속으로 등판시켜 AL 후보와 경쟁하게 만드는 꼼수였다.
투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선관위는 최종 투표율이 약 40%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2018년 총선 투표율(80%)의 절반 수준이다. 일각에선 이마저도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BBC는 “투표율에 대한 유권자 불신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예견된 압승으로 하시나 총리는 2009년부터 네 번 연속 총리직 사수에 성공했다. 1996~2001년 집권까지 더하면 다섯 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게 됐다. 하지만 하시나 총리의 권위주의 행태가 방글라데시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그가 방글라데시의 ‘건국 아버지’로 불리는 셰이크 마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장녀라는 점에서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라만 전 대통령은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지만, 1975년 군부 쿠데타로 암살된 비운의 인물이다. 당시 라만 전 대통령 일가는 군부에 몰살당했고 유럽에 머물던 하시나 총리만 목숨을 건졌다.
하시나 총리는 유세 기간 라만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발신했다. NYT에 따르면 그는 “쿠데타를 거듭하며 혼란을 겪었던 방글라데시엔 이제 안정감이 필요하다”며 장기 집권을 정당화했다. 여기에 라만 전 대통령을 암살한 군부의 뒤를 봐준 세력이 지금의 BNP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날 투표를 마친 뒤 “BNP는 테러조직”이라며 “민주주의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유권자와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수도 다카에서 인력거를 모는 무함마드 사이두르는 가디언에 “내가 왜 뻔한 투표를 하러 가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알리 리아즈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NYT에 “방글라데시는 서류상엔 민주주의 국가로 기록돼 있지만 이젠 일당제 국가가 됐다”고 꼬집었고,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AL이 감옥을 정적들로 가득 채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정선거 논란에 방글라데시는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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