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제품 사면 “우선 지원”…전남교육청 ‘구매 외압’ 만연
관내 62개 학교서 대거 구매
교사들 “관리자 권유받아”
‘도서관 자동화’ 사업도 의혹
“심폐소생술 실습은 현재 용품으로도 충분한데 10배나 비싼 제품을 사야 했습니다. 업자는 이미 학교에 물품 소개 책자를 배부했습니다.”
전남의 한 고등학교는 지난해 499만원을 주고 ‘스마트 심폐소생술 실습용품’을 구매했다. 이 제품은 기존 제품과 비교해 심폐소생술을 할 때 압박 깊이와 빠르기, 자세 등을 평가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보건교사들은 “일반적인 심폐소생술 마네킹만으로도 교육이 충분하다. 오히려 부속이 너무 많아 관리가 어렵다”는 의견을 냈지만 무시됐다. 10배나 비싸고 현장에서 선호하지도 않는 고가의 심폐소생술 실습용품이 전남지역 학교에 대거 보급된 것에 대해 많은 교사는 ‘외압’을 이유로 꼽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남지부가 관내 303개 학교 보건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62개 학교가 해당 제품을 구매했다. 구매 이유에 대해 교사 3명 중 1명(21명)은 “관리자의 권유 때문”이라고 답했다.
교사 상당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학교 관리자나 교육청으로부터 제품 소개 책자나 물품번호 등 상세한 정보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전남교육청이 각 학교에 보낸 ‘사업 지원 공모’에는 ‘스마트 심폐소생술 기기를 우선 지원한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전교조 전남지부는 전남교육청 관내 각급 학교의 물품 구매 과정에서 관리자나 교육청에 의한 ‘구매 외압’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고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전남에서는 지난해 11월 각급 학교의 전광판 설치 사업을 특정 업체가 독식한 것으로 드러났다(경향신문 11월28일자 8면 보도). 해당 업체는 전남교육청 관내에서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발주된 237건의 전광판 설치 사업 중 182건(76.7%)을 진행했다.
전교조 등은 이후 전광판뿐 아니라 각종 교육기자재 구매와 관련해 일선 학교 교사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학교도서관 자동화 구축 사업 설문조사’에서도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22명 중 7명이 “사업 과정에서 관리자가 특정 업체 선정을 유도하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업체에서 사전 안내 없이 학교로 찾아왔다”고 답한 교사도 절반이 넘는 13명에 달했다.
전교조 전남지부가 온라인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일주일 동안 60여건의 각종 제보가 쏟아지기도 했다. “공기청정기가 2대나 있는데 공기살균기를 구매했다”거나 “교장이 책자에 실린 물품만 구입하라고 했다” “교육청과 업체 간 모종의 관계가 의심된다” “업자가 먼저 연락해온다” 등이다.
전교조 전남지부는 “교육청은 특별감사를 거부했고 전남도의회도 관련 사안에 대한 행정사무조사를 포기해 감시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객관적이고 엄정한 조사를 통해 관련 의혹을 해소하고 교육 현장에서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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