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상대방 동의 없는 녹취, 심한 사생활 침해 땐 증거 안돼”
객관적 증거로 사용 인정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 그 경위와 내용에 비춰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원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3월 열린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다른 운동원들과 공모해 선거인들에게 현금을 건네고, 선거운동 기간 전에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A씨의 행적은 경찰이 A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를 분석해 들통났다. A씨의 부인 B씨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2016년부터 약 3년간 A씨의 휴대폰에 통화 자동녹음 기능을 몰래 켜 두었는데, 이때 생성된 녹음파일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A씨 등은 ‘불법감청에 의한 녹음파일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은 A씨 등 운동원들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보고 실형을 선고했다. 상고심에선 A씨 부부의 통화 녹음파일에 증거능력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부부간 통화에도 A씨 등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A씨 등은 해당 녹음파일은 ‘사인에 의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B씨가 A씨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직접 통화한 내용이라 침해의 정도가 비교적 크지 않다고 봤다. 또 은밀하게 이뤄지는 선거범죄의 특성상 구체적인 범행 내용을 밝혀줄 수 있는 객관적 증거여서 증거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증거 수집 절차가 개인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난 것이라면 단지 형사소추에 필요한 증거라는 사정만을 들어 곧바로 형사소송에서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화통화 일방당사자의 통화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 녹음 경위·내용 등에 비춰봤을 때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에는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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