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른 사람 찍힌 CCTV는 왜?…'보복소음' 판결, 주요 증거 봤더니
지난해 12월, 층간소음을 스토킹으로 보고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습니다. 공포심을 주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했다는 게 선고 이유였고, 언론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과연 어떤 증거들로 이런 판결이 내려졌는지 추적해봤습니다. 키우지도 않은 강아지 소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 찍힌 CCTV 영상이 주요 증거로 쓰였습니다.
이상엽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건물주/402호 피해자 : 세입자들 스토킹한 거예요. 112가 하루에 세 번도 오고요.]
[A씨/302호 가해자 : 층간소음이 스토킹이라고 할 수 있냐면서 저희 집 문 앞에 저한테 동의도 없이 CCTV를 달았어요. 그게 오히려 스토킹이잖아요.]
[건물주/402호 피해자 : 자료 있지 않았어요? {자료가 없어요.} 있습니다. {그것 좀 주시면 안 돼요?} 전화 좀 끊을게요. {네?}]
2년 동안 스토킹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40대 남성.
지난해 12월 14일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습니다.
이웃 간 일부러 계속 소음을 내면 스토킹 범죄로 처벌한다는 국내 첫 판단이었습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사건기록만 200장.
JTBC는 경남 김해의 한 빌라에서 벌어진 층간소음 갈등을 파헤쳤습니다.
2021년 10월 402호에 사는 건물주와 딸이 경찰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아래층 302호 세입자가 밤낮 구분 없이 천장과 벽을 두드린다는 겁니다.
언제 어떻게 위협할지 무서워 스토킹처벌법으로 조사해달라고 했습니다.
여기가 층간소임이 있었던 빌라인데, 외부인 출입은 안 됩니다.
CCTV 영상만 봐도 이렇게 세대별로 많이 떨어진 것 같진 않습니다.
당시 빌라에 살던 6세대는 지금 모두 이사를 갔습니다.
오랜 취재 끝에 302호 세입자 A씨를 찾아 만나봤습니다.
A씨는 오히려 자신이 다른 세입자들 때문에 잠을 못 잤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302호 가해자 : 그분(아랫집 202호)이 이사 오고 나서부터 새벽에 '쿵쿵쿵쿵'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친구들 불러서 새벽 3~4시까지 술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고.]
반면 다른 세입자들 얘기는 전혀 다릅니다.
A씨가 우퍼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거나 망치로 벽을 두드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A씨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A씨 집에 경찰이 왔습니다.
압수수색입니다.
[A씨/302호 가해자 : 두 분이 와서 집에 우퍼 스피커 (찾고). 제가 찬송가 튼다고 했으니까. 집을 구석구석 다…노트북하고 데스크탑 컴퓨터 있었어요.]
집 안에서 우퍼 스피커나 찬송가 파일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A씨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경찰이 넘긴 증거는 천장에 조금 파인 흔적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자료는 없을까.
경찰은 건물주에게서 USB 1개를 제출받았습니다.
A씨가 각목 여러 개를 집 안으로 들고 오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건물주는 "A씨가 이 각목으로 천장을 치는 범행을 한 걸로 의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결과 각목을 든 남성은 A씨가 아니었는데 그대로 증거자료에 포함됐습니다.
경찰은 건물주와 세대원 진술, 천장 흔적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사건은 검찰로 갔습니다.
A씨의 범죄일람표를 살펴봤습니다.
우퍼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고, 둔기로 벽을 치고,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들리고, 문을 쾅쾅 닫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린다고 적혔습니다.
다 더하면 86회입니다.
경찰 압수수색에서 확인이 안 된 우퍼 스피커나 찬송가 내용도 다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A씨가 키우지 않는 강아지 짖는 소리까지 범죄에 포함됐습니다.
이제 건물주(402호)를 만나봐야겠습니다.
건물주는 A씨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건물주/402호 피해자 :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떨어뜨려도 쾅쾅쾅 바로 치던 사람이 바로 밑에 집(302호). 저녁 내내 잠 못 자고. 사람들 다 들어오면 그 시간대 이용해서 새벽까지 그렇게 치고 하는데.]
이렇게 팽팽한 대립 속에 1심과 2심에 이어 3심 결론도 같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건 우리 사법시스템의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A씨는 억울하다며 소리 전쟁은 진행형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상 첫 층간소음 스토킹'이란 수식어로 많은 부분이 가려져 버렸다는 겁니다.
1심 재판을 맡은 창원지방법원은 JTBC에 "검찰의 공소사실 중 일부만 유죄로 판단했다"며 "피해 진술과 소음일지, 천장 흔적 사진 등 증거를 종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또 "범죄 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없더라도 다른 증거를 종합해 유무죄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소를 맡은 창원지방검찰청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기소해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안"이라며 "그 외 다른 입장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A씨는 재심이 가능할 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촬영 김진형 / 제작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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