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습기 참사’ 14년…국가와 법률, 존재 이유 스스로 입증해야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처음 판매된 가습기살균제는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본격 팔리기 시작했다. 처음 피해가 밝혀진 것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때지만 피해 신고도 안 받고 방치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2016년에야 사회적 조명을 받았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지만 말뿐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많은 피해자를 만든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대통령 7명을 거치면서 진행돼온 과정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제조·판매 기업과 이를 허용 내지 방조한 정부는 책임져야 할 두 주체다. 하지만 정부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피해자들에게 배상하지 않고 있다. 기업은 2023년 말까지 신고자가 7891명, 피해구제 인정자가 5667명이나 나왔지만 이 중 9%인 500여명에게만 배상했다. 전체 피해자는 95만명으로 추산되지만 1%도 찾아내지 못했다. 화학물질에 호흡기가 노출되면 치명적 질환에 걸리고 사망까지 한다는 교훈으로 모든 스프레이식 제품에 대한 호흡독성안전시험이 의무화돼야 하지만 그런 제도는 거론조차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법체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2012년부터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수십차례 고소·고발을 했지만 검찰은 2016년에야 100여개 관련 기업 중 옥시 등 8곳만 기소했다. 10여개 정부부처에 대해선 수사계획만 세우고는 덮었다. 2018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하자 마지못해 수사를 재개했고, SK 등 6개 업체를 추가 기소했다.
법원은 검찰의 1차 기소에 대해 2019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고, 2차 수사에 대해선 2021년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 판결했다. 증거 부족이라는 게 이유였다. 피해자들은 ‘내 몸이 증거다’라며 법원이 살인기업을 비호한다고 분노하고 있다.
다행히 항소심 재판부는 이전과 다르게 적극적 자세로 재판을 이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증거를 채택하는 것은 물론이고, 1심 때 다툰 증거와 쟁점도 새롭게 살피면서 재판 모니터링을 해온 피해자가 약간의 희망을 갖게 된다고 전해오기도 했다.
이번 형사재판의 쟁점인 CMIT/MIT란 살균성분 제품은 총 8개이고 피해구제 인정자의 41%인 2312명이 사용 피해자다. SK가 만들고 애경이 판매한 제품의 피해자는 1633명, 이마트 제품 피해자는 442명이다.
올해는 첫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판매된 지 30년째, 2011년 참사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 14년째 되는 해다. 1월11일로 예정된 형사재판 항소심 판결은 우리 사회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제대로 해결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검찰 구형량(5년)대로 유죄가 선고돼 사법 신뢰가 조금이라도 회복돼야 한다. 그것만이 가해 기업들이 회피하는 피해자 배·보상이 이뤄지는 길이며, 국가와 법률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려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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