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심판? 피치 클락? 500경기 베테랑은 생존을 위협받았다..."투수에게 점점 불리해지는 것 같다" [오!쎈 창원]
[OSEN=창원, 조형래 기자] “야구는 투수가 유리한 종목인데…”
2024년의 새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스프링캠프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KBO리그의 화두는 단연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들이다. ‘로봇심판’으로 불리는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Automatic Ball-Strike System)과 피치클락, 견제 제한 등의 도입 여부를 두고 구단과 선수들 사이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KBO가 ABS와 피치클락, 견제 제한 등의 도입을 예고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KBO는 지난 2020년부터 4시즌 동안 퓨처스리그에서 ABS 시스템을 도입해서 시범 운영과 시스템 고도화를 진행해왔다. KBO 측은 “볼-스트라이크 판정의 정교함과 일관성 유지, 그리고 판정 결과가 심판에게 전달되는 시간 단축 등의 성과를 거뒀다”라고 설명했다.
ABS는 주심이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에서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동시에 스트라이크 또는 볼 판정을 내리고, 시그널이 이어폰을 통해 주심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주심은 ABS로부터 받은 정보를 단순히 전달만 하면 된다. 최근 KBO리그에서 숱하게 벌어진 판정 논란, 그리고 신뢰 훼손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결단이다.
또한 KBO는 “피치 클락도 올 시즌 이를 적용한 메이저리그의 경기 소요 시간 변화 및 도루 등 경기 지표 변화, 관중의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KBO 리그 투수들의 평균 투구 인터벌을 전수 조사 했으며 평균 견제 시도 횟수, 타자의 타격 준비 완료 시점 등 세부 지표도 함께 분석했다”라면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피치 클락과 견제 횟수 제한 등의 제도는 이미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도입했다. ‘스피드업’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22년 3시간 4분이었던 평균 경기 시간은 지난해 2시간 40분까지 줄이면서 효과를 입증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주자가 있을 때 피치 클락은 20초에서 18초로 더 줄일 계획이다.
하지만 KBO리그의 즉각적인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ABS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도 여전히 완전 도입 여부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라 대혼선이 불가피하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등에서 최종 점검을 마칠 예정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KBO도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KBO 심판진은 이천 베이스볼파크에서 피치 클락과 ABS 시뮬레이션 훈련을 진행했지만 급진적인 도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초 스트라이크 존 설정과 변화구 판정 등 KBO리그 구성원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회장 LG 김현수는 “로봇심판이 도입되면 일정하게 볼 판정은 되겠지만 눈으로 봤을 때 정말 칠 수 없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갈 때도 있다. 그런 공이 어떤 판정을 받을지 걱정된다. 분명 경기 속도는 빨라질 것이지만 그 속도에 대해 선수들이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봤다.
피치 클락에 대해서 김현수는 “12초 룰이 아닌 피치 클락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야구는 사인이 많다 보니까 그게 정말 잘 활용될지 가장 걱정된다”라면서 “너무 많은 게 한 번에 바뀌어서 걱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KBO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으니 우리도 잘 따라보고 선수들이 어떤 혼란을 겪는지 파악할 것”이라고 선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포수 최다 경기(2233경기) 출장에 빛나는 삼성 강민호는 최근, 김태균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태균 [TK52]'에 출연해 “프로야구에서 20년 뛴 포수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소신 있게 이야기하자면 저는 로봇 심판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심판들의 권위도 권위지만 오심도 프로야구에서 하나의 묘미라고 본다. 로봇 심판이 도입되면 솔직히 아무나 데려와도 주심을 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심판이 그동안 쌓았던 경력도 있을 거고 경기 중 중요한 상황에서 오심이 나오면 비디오 판독을 하면 되고 심판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다른 걸 이용하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던질 필요가 없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강한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 어디든 강하게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이제 먹히고 옛날처럼 바깥쪽에 하나 빠지게 잘 던지는 투수들이 이제 불리해졌다. 이제 그런 걸 스트라이크로 안 잡아줄 거 같다"고 자신의 소신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로봇 심판이 도입되면 타자에게 유리해진다는 것. 강민호는 "무조건 타자가 유리할 거 같다. 투수는 어릴 적부터 던졌던 바깥쪽 코스가 볼이 되니까 그게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려면 타자는 더 좁아져야 한다. 자기 존이 좁아지니까 타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통산 500경기 61승, 157세이브에 빛나는 베테랑 투수 이용찬(34)의 경우도 소신을 밝혔다. 이용찬은 8일, NC의 신년회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ABS, 피치 클락 등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고 작심 발언을 내뱉었다.
이용찬은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투수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피치 클락도 피치 클락이지만 로봇 심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영역이다. 캠프에 가서 해봐야 알겠지만 투수들이 아마 많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투수들의 모든 기록들이 안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 솔직히 타자들이 더 유리할 것이고 또 주자들도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본다. 견제구를 두 번 이상 못하는 것도 불리한 것 같다”라면서 “솔직히 야구는 원래 투수가 유리해야 하는 종목인데 점점 투수가 불리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ABS를 통한 공정한 판정은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야구의 특성상 심리적인 부분까지 건드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100%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다고 생각한 공인데 판정이 안되면 무조건 영향이 있다”라며 “타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다. 투수들이 더 예민할 것이다. 스트라이크 하나로 경기가 끝날 수 도 있는데 두세 차례 상황이 더 이어질 수 있으니까 예민해질 것 같다”라면서 투수의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거듭 밝혔다.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 로봇 심판 및 피치 클락 도입은 오는 11일에 열리는 KBO 이사회를 통해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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