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생쥐, 유전자 편집 치료제로 시력 찾았다

이병철 기자 2024. 1. 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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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IT·브로드연구소 공동 연구진
프라임 에디팅,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보다 효과 좋고 부작용 적어
전달체 성능 개선한 ‘eVLP’ 개발해 생쥐서 시력 회복 성공
뇌 세포에 적용도 가능해
유전자가위 ⓒ News1 이영성 기자

미국 연구진이 살아있는 동물에게 차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프라임 에디팅’을 사용해 유전병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프라임 에디팅은 기존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와 달리 유전자 편집과 교정을 동시에 할 수 있고 부작용 우려도 적다. 지난해 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치료제 ‘엑사셀’이 영국과 미국에서 신약 허가를 받은 데 이어 프라임 에디팅을 이용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브로드연구소 연구진은 8일 유전병으로 실명한 쥐의 망막 세포에 프라임 에디팅 유전자가위를 넣어 시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리우 브로드연구소 교수는 “프라임 에디팅을 이용해 동물에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연구 성과”라며 “프라임 에디팅이 의료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줬다”고 말했다.

프라임 에디팅은 리우 교수가 2019년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를 개량해 만든 ‘4세대’ 기술이다. 유전 정보를 담은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염기서열을 자르는 것뿐 아니라 원하는 염기를 끼워 넣을 수도 있다.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유전자를 잘라내기만 하는 1~3세대의 기존 유전자가위와 달리 잘라낸 부위에 다른 종이를 덧대 붙이는 접착제가 결합한 형태인 셈이다.

프라임 에디팅 기술이 개발되면서 과학계에서는 유전자가위 치료제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필요한 염기를 끼워넣기 위해 추가 성분이 필요한 크리스퍼와 달리 자체적으로 교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교정 정확도도 높아 원하지 않는 염기가 교정되는 부작용인 ‘오프타겟(off-target)’ 효과가 덜 일어난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프라임 에디팅 기술을 활용하면 유전병의 90%를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프라임 에디팅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은 난항에 빠진 상태였다.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정하려면 살아 있는 세포 안에 치료제를 넣어야 하지만, 프라임 에디팅 유전자가위의 크기가 워낙 커서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연구진은 치료제를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전달체’를 새롭게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반적으로 전달체로 사용되는 ‘바이러스 유사 입자(VLP)’를 개선한 ‘개량 바이러스 유사 입자(eVLP)’를 사용해 생쥐에서 실명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해 시력 회복에 성공한 것이다. 바이러스 유사 입자는 바이러스의 구조를 모사해 세포 내부로 물질을 전달하기 쉽게 만들면서도 실제 바이러스처럼 복제하거나 감염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아디얏 라구람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은 “유전자가위 치료제는 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포 내부에서 효율적으로 방출되기도 해야 한다”며 “전달체를 개량해 프라임 유전자가위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eVLP를 이용해 색소성 망막염과 레버 선천성 흑암시(LCA)로 시력을 잃은 생쥐에게 유전자가위 치료제를 주입했다. 두 질환 모두 사람에게도 실명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유전병이다. 색소성 망막염은 4000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며, 레버 선천성 흑암시는 10만명 중 2~3명에게 나타나지만 아직 마땅한 치료법은 없는 상황이다.

치료제를 투여받은 생쥐는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가 교정되는 동시에 시력도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망막 세포의 20%에서 유전자 변이가 회복됐고, 유전자 편집 효율성은 일반적인 전달체를 사용했을 때보다 최대 170배 늘었다. 반면 오프타겟 부작용은 전혀 관찰되지 않아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망막 세포뿐 아니라 뇌세포로의 유전자가위 치료제 전달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뇌세포를 목표로 유전자가위 치료제를 만들어 투여한 결과 뇌 피질 세포의 절반에서 유전자 교정이 이뤄졌다.

리우 교수는 “유전자 치료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단백질을 이용한 전달체 개발이 필수적”이라며 “eVLP 기술을 개선해 안구, 뇌뿐 아니라 다른 조직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8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Nature Biotechnology, DOI: https://doi.org/10.1038/s41587-023-0207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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