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지식산업의 위기, 싱크탱크의 역할
[알립니다]디지털타임스는 갑진년 새해를 맞아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정책 공론의 장을 마련합니다.
매주 화요일자 오피니언 면에 게재하는 칼럼 '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는 글로벌 G5로 도약하려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가야할 정책방향을 심층적 분석 등을 통해 제시할 것입니다.
필진은 사단법인 K정책플랫폼(이사장 전광우, 공동원장 정태용·박진)의 전문가들입니다. 2021년 설립된 K정책플랫폼은 외교안보·경제산업·교육·복지노동·과학기술·환경 등 각 분야 120여명의 대학교수, 현장 경륜가 등으로 구성된 입법 연구 기관입니다.
각 분야 필자들은 최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국가 현안과 쟁점들을 명쾌하게 짚고 해법도 제시해 정책 수렴의 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 1년에 걸친 장기 연재 칼럼의 첫 필자는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인공지능(AI), 미중 갈등….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합의불능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 예컨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지난 2011년 발의된 이후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합의는 사실 확인과 목표 조정의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친구와 오늘 저녁에 갈 식당을 합의하려면 식당 선택에 중요한 목표인 맛, 가격, 소요시간에 대한 사실을 식당별로 확인한 후 친구와 나의 목표를 절충하면 된다. 미래 에너지원 같은 국가적 합의도 마찬가지다. 신재생과 원전 중 어느 쪽이 안전과 환경성, 에너지 공급과 가격, 그리고 에너지 산업발전이라는 목표에 유리한지를 밝히고 이 목표들을 조화하는 대안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합의는 쉽지 않다. 먼저 첫 단계인 공동의 사실확인이 어렵다. 사실을 다르게 인식하는 두 사람이 합의를 하긴 어려운 일이다. 원칙적으로 사실인식은 입장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그러나 사실이 미래로 연장되어 전망 단계로 가면 주관의 여지가 커진다. 탈진실의 시대엔 더욱 그렇다.
사실 규명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는 전문가도 없지 않다. 대체로 개인적인 이익이 작용한다. 이들은 특정 정파나 노조, 기업 등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며 구애편지를 쓴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를 주로 접하면서 객관성을 더욱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사실을 왜곡하는 전문가는 사회적 합의를 저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 정파 혹은 집단의 지원을 받으며 지식생태계를 교란한다.
합의를 위한 둘째 단계인 목표 조정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이 양극화 되어 있으면 더욱 어렵다. 합의를 하려면 원하는 바를 100% 이룰 수는 없고 일부 양보를 해야 하는데 극단적인 유권자들은 양보를 악(惡)에 굴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정당은 양보보다는 무조건 버티는 길을 택하게 되고 합의와 변화는 물 건너 간다. 장기적으로 유권자가 무조건 한 정파를 지지하기 보다는 사안별 시시비비를 가려주어야 합의가 촉진된다. 단기적으론 전문가도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전문가 집단이 여야의 입장을 적절히 절충한 방안을 제시하면 이것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사회적 합의를 촉진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이 제시한 합의안을 여야와 국민이 존중하려면 전문가에게 정파성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중립적 전문가라고 늘 합의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립적 학자 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회색론자 혹은 양비론자도 많다. 어떤 이들은 늘 좌(0)~우(10)의 기계적 중간(5)에 서 있기도 한다. 중립적 전문가가 합의 형성에 도움이 되려면 사안별로 3과 7 사이를 오가며 시시비비를 가려 주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사실을 규명하고 합의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 조직이 우리 사회에 있는가? 국책연구소는 정부 입장에 반하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 기업연구소나 정당연구소는 당연히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임용이 급한 대학교수들은 국가적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논문 양산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중립적 학자가 없진 않으나 이들은 조직되어 있지 않아 사회적 합의에 도움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 지식산업의 위기이다. 지식인들은 우리 사회의 합의형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사단법인 연구소에 희망을 걸어 본다. 극단적인 이념이나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운 학계와 현장의 합리적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벌이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출범한 (사)K정책플랫폼이 여야 모두로부터 인정 받는 심판이 되는 날을 꿈꾼다. 궁극적으론 급변하는 미래에 원활한 사회적 합의와 변화를 통해 지속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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