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팬덤이 나아가야 할 길

김진철 기자 2024. 1. 8. 18: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부산 연제구 부산경찰청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김진철 | 문화부장

지난해 엘지(LG) 트윈스 우승에 환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회는 남달랐다. 엘지 트윈스가 엠비시(MBC) 청룡이던 시절, 어머니를 졸라 회원으로 가입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다. 프로스펙스 대리점에서 훅 끼쳐온 파란 점퍼 냄새는 지금도 후각을 자극한다. 백인천, 이종도, 하기룡, 이해창, 이광은 등 쟁쟁한 스타플레이어 중에서도 특히 발 빠른 유격수 김재박 팬이었다. 김재박, 이만수, 김봉연을 두고 누가 더 뛰어난지 침 튀기던 국민학생들의 말싸움은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엠비시 청룡이 럭키금성에 매각되면서 프로야구에 대한 내 관심도 함께 사라졌다.

야구선수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때 당구장 티브이에서 에스이에스(S.E.S.)라도 나오면 뭇 선수들은 큐대와 함께 정신도 내려놓아 경기가 중단되곤 했는데, 걸그룹을 쳐다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 팬이라고 하기에는 멋쩍은 일이긴 할 것이다. ‘삼촌팬’이 등장하기 전 20대 남성이 걸그룹 좋아하는 일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기이한 문화와 세태도 있었으리라.

경멸이 담긴 명칭이라 할 ‘~빠’라는 비속어도 그때 두루 쓰이기 시작했다. 극성 여성팬들이 남성 연예인을 ‘오빠’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말이다. ‘영원한 오빠’라고 불리는 조용필의 팬 무리가 일찍이 ‘오빠부대’라 일컬어졌는데, 그들의 실상을 목격한 것은 내가 수습기자 시절이던 2003년 1월이었다. 서울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몰려든 40대 안팎의 여성들은 예상과 달리 조곤조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아내를 잃은 조용필을 다독이고 함께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팬덤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에 잠겼었다.

예상 밖이라 여겼던 것은, 팬클럽에 대한 편견 탓이었을 것이다.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에 환호하는 팬들을 먼저 떠올렸던 나로서는, 울부짖고 괴성을 지르며 오빠들에게 맹종하고 더 나아가 ‘사생팬’(사생활까지 침범하는 극성팬)으로, 마침내 ‘까’로까지 돌변하는 모습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빠를 위한다며 전쟁도 벌였다. 대표적인 장면은 1997년 12월 연말 방송사 가요시상식을 앞두고 벌어진 ‘전설의 패싸움’이다. ‘젝키’와 ‘에쵸티’ 팬들은 공개방송 입장 전 수백명이 엉겨 붙어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았는데 “우리 오빠들이 대상을 탄다”던 설전이 패싸움으로 번졌다. 당시 9시 뉴스에도 나왔던 이 장대한 장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2012)에서 재연되기도 했다.

요새 방탄소년단과 팬덤 ‘아미’를 보면, ‘빠’나 ‘까’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아미는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에서 여성혐오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일본 우익·여성혐오 작사가와의 협업을 막고 때마다 환경 운동과 동물보호 활동에 기부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관계는 사뭇 수평적이다. 스타와 팬이 각각의 역할을 하되 일방적으로 팬이 스타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 돕고 때로는 견제하는 구도다. 민주적 참여란 이런 것이 아닐까. 좋아하되, 계속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때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것. 반지성과 맹목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팬클럽 내부 견제가 원활히 작동하고 스타 역시 팬을 이용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동어반복적 표현이다. 시민지배 체제가 시민참여 없이 바람직하게 운영될 수는 없다. 맹목적 참여가 극단적 팬덤으로 이어지면 민주 체제는 위태로워진다. 다만 처음부터 바람직한 참여가 있을 수는 없다. 군사독재 체제에서 정치는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가 무관심의 대상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참여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 잡초도 함께 큰다. 민주주의가 갈 길은 아직 먼 것이다.

야당 대표 피습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정치 테러가 난무하던 해방 정국을 언급한다. 식민지배에서 갓 벗어나 민주주의가 뭔지도 몰랐던 그 옛날과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룬 지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지금을 견주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팬덤을 과용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에 과몰입한 팬덤이나,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이나, 자성함으로써 낙관을 잃지 말아야 할 때다.

nowher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