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논의 넘어 ‘의대 교육 붕괴’ 현실부터 논의를
[왜냐면] 이경민 | 동국대일산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젊은의사협의체 교육위원장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의과대학 증원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찬반을 떠나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는 시간이 지나도 성숙하지 못했고, 해법은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 심지어 올해는 의대 증원이 필요한 이유, 즉 대한민국 의료가 가진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없고 숫자 놀음으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다.
의대 증원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대한민국 의료’라는 큰 산이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라는 나무를 더 촘촘히 심어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미 그 산은 너무 척박해서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떠나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 위기에 봉착한 필수의료와 지방 의료가 살아난다는 명제, 이 명제의 가부는 차치하더라도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늘어난 의대생을 제대로 된 의사로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대생이 의사, 그것도 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전문의,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10년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대 교육 및 전공의 수련은 많은 문제에 봉착해있고 새로운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몇 년 뒤, 증원이 되든 그렇지 않든 의대생이 마주할 미래는 암울하다.
우선 저출산에 따른 지방 대학의 소멸이 우려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지방 의대 입학생에게는 열악한 시설과 교육환경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의대는 예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대는 하나의 단과대학인데 속해있는 지방 대학이 무너지면, 높은 등록금을 내고도 열악한 시설과 환경에서 대학생활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전공과목 외에 제대로 된 교양과목을 들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전인적인 의료를 지향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이다. 이는 10년 전에도 지방 의대생들이 겪고 있었던 문제이나, 앞으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방 대학병원 의사 수급문제는 교육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에서도 교수들이 줄지어 사직하고 있다. 지역의 문제를 넘어서 더 이상 대학교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현상에 대해 ‘진료하는 의사’의 관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경우는 많지만, ‘교육하는 의사’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학생과 전공의들은 교육을 전담하는 의사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3분 진료를 하고도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외래를 지켜야만 하는 교수는 실습생과 전공의에게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직한 동료 의사의 진료까지 떠맡아 교육에 참여가 불가능한 정도가 됐다. 특히나 교육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필수 과에서 이런 일이 더욱 가속화된다.
희생을 통해 이뤄지던 교육이었는데, 더 이상 희생할 사람이 없고 사회는 더 이상 희생을 미덕으로 칭송해주지 않는다. 돈이 유일한 가치가 돼버린 사회에서 돈 말고 다른 가치들로 버티는 교수라는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하지만 미래의 의사를 키워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학교수들이다. 이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은 미래 의사 양성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미래에 의대생들은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녹화된 강의나 온라인 강의로 대학 교육을 마쳐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마저 내려놓을 만큼 힘든 과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점점 더 회피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나무를 심기 전에 물을 뿌리고 거름을 뿌려 토양이 어린 나무와 새싹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기존에 있던 나무가 탄탄하게 뿌리를 내려야 흙을 붙잡고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숫자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딸들이 마주할 열악한 환경에도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순한 숫자·정원 문제를 넘어서 다른 문제들까지 해결하려는 노력이 대한민국 의료를 비옥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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