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내년 초등 도입, 교사·학부모로서 반대합니다

한겨레 2024. 1.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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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6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왜냐면] 김재욱 | 전주 여울초 교사

이주호 교육부 장관님, 저는 15년 차 초등교사입니다. 6학년 담임을 9년 했고, 올해도 6학년을 맡고 있습니다. 2023년 3월2일, 학생들과 만나는 첫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5년 동안 쓴 글보다 더 많은 글을 올 한 해 쓰게 될 것입니다.” 좌절과 동시에 반신반의하던 학생들은 담임교사를 잘못(?) 만난 덕에 수업 시간마다 공책에 필기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원고지 공책을 사주고, 매주 금요일이면 주제 글쓰기 숙제를 내줬습니다. 국어 시간에는 논설문을 쓰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독서토론을 위해 토론 공책을 썼습니다. 저는 해가 갈수록 독서와 글쓰기, 토론 수업을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사고력, 문해력, 소통 능력, 표현력, 문제 해결력 등을 익힙니다. 초등교육의 목표인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1년 뒤인 2025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니요. 15년 차 초등교사로서, 5학년과 3학년 두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교육부의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전면 반대합니다. 첫째, 학생들이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디지털 기기’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오은영 박사는 “공부의 큰 목적 중 하나는 두뇌 발달”이라고 말했습니다. 두뇌는 독서와 토론을 통해 발달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는 아이들과 영상을 보는 아이들의 전두엽 활성도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과연 초등 3학년 학생이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디지털 기기 중 하나로 받아들일까요? 이렇게 전두엽을 안 써 버릇한 학생들은 화면 보는 일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집중력이 낮아집니다. 어휘력, 독해력, 문해력도 낮아집니다. 단어나 용어의 뜻을 아예 몰라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중등 교사들의 사례는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초등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텍스트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쓰는 어휘의 폭이 좁아지고 소통 능력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언어의 폭이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장관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둘째, 디지털 교과서는 뇌 발달뿐만 아니라 학습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현재 학생들은 책을 보다가 선생님을 보기도 하고 발표하는 친구나 칠판을 봤다가 다시 책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교과서는 전환과 집중을 종이책만큼 쉽고 빠르게 하기 어려워 자연스레 소통의 양도 줄어들 것이고 질도 낮아질 것입니다. 또다른 악영향도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각도기를 쓰는 법을 배우는 경우, 디지털 화면 속 도형의 각을 재는 일은 종이책 위 도형의 각을 재는 일보다 훨씬 번거롭고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수 모형이나 실물 쌓기나무(다양한 모양으로 쌓아 올리는 정육면체)를 디지털 기기 속 화면이 대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학교에서 컴퓨터를 적게 쓰는 나라가 더 많이 쓰는 나라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교과서가 실제로 종이책 교과서를 대체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 유럽에서 디지털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와 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이지 기존 교과서를 대체한 경우는 없습니다. 디지털 교과서가 아닌 디지털 교재의 개념입니다. 지난 10월 스웨덴이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가고 연필 글쓰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이런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유네스코도 지난 8월 교육에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각 학교에서 인터넷 연결 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기술이 교사의 대면 교육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혁신도 학습도 결국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전북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는 학생 수만큼의 디지털 기기가 들어와 있습니다. 교사들은 필요에 따라 이 기기를 활용합니다. 디지털 교과서도 이래야 합니다. 기존 수업을 보조하고 학습에 도움이 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있다 믿는 현직 교사이자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로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전면 재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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