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가해 기업을 유죄판결로 단죄하라”···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족 ‘영상 탄원서’ 공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족 오동진씨(64)가 말문을 열었다. 오씨의 어머니는 2011년, 아버지는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오씨는 “어머니가 호흡기 질환을 앓으실 때 가습기가 회사에서 나와서 갖다 드린 것도 나고, 날마다 가습기에 생기는 물때를 벗기느라 고생하는 아버지께 이렇게 좋은 제품이 나왔는데 왜 안 쓰냐고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쓰게 만든 것도 나”라며 “‘당신이 진짜 죄인이 아니고 내가 죄인’이라고 사과하고 고백하는 주체가 나서지 않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죄인으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유족이 서울 고등법원에 전달한 영상 탄원서 중)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 시민단체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은 가해기업을 유죄판결로 단죄하라”라고 주장했다. 오는 11일은 검찰이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판매해 업무상과실치사죄 혐의로 기소한 SK, 애경 등 가해 기업 임원에 대한 항소심 선고 기일이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2021년 1월 SK케미칼, 애경 등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주요 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은 폐 질환과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동물실험 등에서 위해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이다. 검찰은 2022년 8월 항소심 공판에서 “과학적 연구 결과 분석을 개별적이고 파편적으로 취사선택했다”며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최고 5년 형을 구형했다.
1심 판결 이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물질이 질환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추가로 나오기도 했다. 2022년 12월에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 중 CMIT/MIT가 폐까지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가 호흡기에 노출되면서 폐에 도달할 수 있고,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최초의 연구였다.
지난해 말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는 7891명, 이 중 사망자는 1843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른 구제 대상은 5667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1258명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날 회견에서 “구제법에 따라 인정된 분 중 CMIT/MIT 살균 성분을 가진 제품 8개를 사용한 피해자가 2312명으로 40%가 넘는다”라며 “이 제품 때문에 소비자들이 죽고 다친 것이 맞는지, 누구 책임인지,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인 SK와 애경, 이마트 등이 유죄인지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날 단체가 공개한 영상 탄원서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원숙씨(79)는 “지금까지도 기침, 가래 때문에 저녁에 자지를 못한다”라며 “밤새도록 휴지를 쓰고 있고, 피가 일주일간 나올 때도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책임을 안 진 게 나는 너무 억울하다. 이건 안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8130830021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31230090002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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