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상공인 온라인 구매 `부가세 폭탄`
국세청, 입증책임 납세자에 떠넘겨
"내역 어떻게 다 입증하나" 하소연
충북 청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모씨는 최근 부가가치세 신고를 앞두고 예상세액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작년 하반기 매출이 1년 전에 비해 30%가량 줄었는데도 부가세가 오히려 더 많이 나온 것이다. 알고보니 한씨가 오픈마켓 등에서 구입한 식자재와 부자재 등의 지출 내역이 부가세에서 공제되지 않아서였다. 앞으로 오픈마켓과 판매(결제) 대행업체 결제내역을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이 같이 부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세청은 올해(2023년 3분기분)부터 부가세 신고시 오픈마켓과 결제 대행업체 결제내역을 '공제대상'에서 '선택불공제'로 바꾼다. 선택불공제는 일단 업무와 무관한 비용으로 간주하고, 사업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한해 공제로 변경처리가 가능한 항목이다. 자동공제 대상서 제외돼 납세자가 공제대상임을 일일이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세청은 제도 변경에 대해 판매자 정보가 불분명한 데다 판매(결제) 대행 업체는 판매자가 부가세 간이과세자이거나 면세사업자인 경우 공제를 받으면 안 되는데도 공제를 받은 뒤 나중에 과소세액을 추징받는 경우가 자주 발생해서라고 설명한다.
부가세는 매출의 10%에서 영업활동에 이용한 각종 매입 항목에 대한 부가세(10%)를 공제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여기에 농·수산물은 원래 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 면세 상품이지만, '의제매입세액공제'를 통해 매입액의 일정 비율을 공제해준다.
문제는 온라인을 통한 원자재 구매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세청이 네이버와 쿠팡 등 오픈마켓 등을 통한 결제내역에 대한 입증 책임을 납세자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20조원을 넘기며 올해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직전 신고까지만 해도 사업용 신용카드의 사용내역을 국세청이 판단해 공제·불공제 여부를 결정했지만, 이제는 모두 불공제 처리한다. 개별 납세자는 선택불공제로 분류된 지출내역에 대한 증빙자료를 일일히 준비해 소명해야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씨는 "1주일에도 수십 번씩 물건을 주문하는데, 그 수많은 내역을 어떻게 일일히 증빙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그대로 부가세를 납부할 경우 상당한 피해도 예상된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계산해보니 선택불공제로 전환된 항목들을 그대로 신고할 경우 부가세를 납부하는 인원이 약 15%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부터 부가세 신고 대상자는 반드시 공제와 불공제 내역을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항목들을 선택공제로 하다보니 나중에 잘못 공제된 세액을 추징하는 과정에서 이의제기나 민원이 많았다"며 "이번에 한번 불공제로 세액신고를 받아보고, 다시 공제로 전환할 지 여부를 검토해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대로 과다납부된 세액은 경정 청구 등을 통해 충분히 돌려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나친 행정편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전담 세무사를 이용할 수 없는 영세 소상공인이 공제 사유 입증에 더 어려움을 겪을 게 볼을보듯 뻔하다. 국세청이 강조해온 소상공인 친화적 세정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세청은 이날 소상공인 등 128만명에게 부가세 납부기한을 2개월 직권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일 김창기 국세청장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불황기에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인들이 세금 문제로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문성 한양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정당국이 불공제 항목을 일일이 확인하는데 드는 인력 소요가 적잖았다는 제도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전 홍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납세자에게 이처럼 증빙 책임을 넘기는 것이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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