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서정시 한편 [손이천의 '머니&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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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황규백(92)은 고등학생 때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해 참전한 후 1968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당시 유럽 미술계에 유행했던 판화 열풍을 본 그는 유서 깊은 판화 공방인 '아틀리에 17'에서 일하며 판화를 배웠고, 동판화 기법 중 가장 난이도가 높지만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메조틴트의 매력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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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황규백(92)은 고등학생 때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해 참전한 후 1968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당시 유럽 미술계에 유행했던 판화 열풍을 본 그는 유서 깊은 판화 공방인 '아틀리에 17'에서 일하며 판화를 배웠고, 동판화 기법 중 가장 난이도가 높지만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메조틴트의 매력에 빠졌다.
어느 날 미국 화상의 눈에 띄어 1970년 뉴욕행을 단행한 작가는 1974년 영국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포스터를 위해 기획된 작품집 판화를 제작하는 등 약 30년간 명성 있는 판화가로 뉴욕 시기를 보냈다. 그는 메조틴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일상의 사물이나 생명체를 세밀하게 묘사했는데,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띄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는 달리 일상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감각과 작가 내면의 행복감을 드러낸다. 또 황규백의 작품은 대부분 배경이 어두운 메조틴트 작품과는 달리 비교적 밝고 부드러운 색조로 이루어져 몽환적이고 신비하다.
2000년, 칠순을 앞두고 귀국한 작가는 체력적 한계를 느껴 판화를 접고 회화로 장르를 옮겼다. 그는 "회화는 판화와 비교하면 그리고 싶은 사물을 뜻대로 마음대로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바이올린, 오리, 우산, 시계, 바위, 해와 달 같은 소재들은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든 것으로, 섬세한 필치로 그린 이런 일상적 사물들은 시적이고 서정적이다. 구순이 넘은 지금도 그는 여전히 휴일 없이 매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빅토리아&버트뮤지엄, 브리티시 뮤지엄,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브뤼셀 왕립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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